두 여름날
아. 더워. 더워 죽겠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를 열고 수박을 꺼내 칼로 자를 틈도 없이, 싱크대에 서서 마구 퍼 먹었다. 정신줄 놓고 허겁지겁 먹고 나니 벌써 수박 반통을 다 먹었다. 다이어트한다고 오전 내내 운동했는데, 도루 아미타불. 너무 덥다. 정말 너무 덥다. 이렇게 먹지 않으면 수박 통 대신 내 머리통이 터질 것 같았다. 1994년 여름. 그해 여름은 한 동안 제일 더웠던 여름으로 기록이 되었다.
스물한 살 여대생은 여름 방학 동안 살을 뺀다고, 일어나자마자 수영장에서, 곧바로 에어로빅장에서 운동을 했다. 살을 빼겠다는 일념으로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길에 아무도 없을만큼 더웠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의 악다구니가 머리를 울렸다. 이글이글 타는 한낮의 더위. '여름'을 생각하면 뜨거운 해, 골목길, 매미 소리, 수박, 에어로빅이 같은 선상에서 뱅뱅 떠올랐다. 시끄럽고, 끈적거리고, 뜨겁고, 냄새가 나는 청결하지 않은 느낌.
그리고,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여름, 2007년. 아들을 품고 있었던 그 해는 지금까지의 더위 중 최고였다. 양수의 온도도 체온과 똑같이 36.9도이니, 늘 10kg 가까운 뜨거운 물과 태아를 품고 다니는 셈이다. 세상에, 더워도 더워도 그렇게 더울 수가. 에어컨도 무용지물이었다. 머리에 아이스팩 하나 올려두고, 엉덩이에 하나 깔고, 가슴에 한 개 끌어안고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
아이를 낳은 후에도 여전히 더웠다. 몸조리를 하느라 한 달 내내 뜨거운 미역국을 먹었다. 물리도록 먹고 먹고 또 먹었다. 그 뜨거운 여름날 불 앞에서 미역국을 끓여 주시는 어머니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감사히 먹을 수밖에. 나도 아이도 꽁꽁 싸매고 또 싸매고...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서는 여름이 더 멀어졌다.
이상하다. 올핸 여름이 좋다...?
금송이 비실비실해 아래로 옮겨 주었더니 불꽃놀이 하듯 새 잎을 터트린다. 아고... 미안해라. 실내에서 새잎을 틔우지 못하는 올리브나무도 해 아래로 옮겨 주었다. 일주일 이주일쯤 지났을까. 온몸에서 새잎을 틔워 낸다. 로즈메리도, 커피나무도, 삼색 버드나무도 해 아래에서 춤을 춘다. 훨씬 자유롭다. 녀석들. 실내에서는 틔워내는 새 잎과 생명 에너지의 레벨이 다르다. 아주, 생명을 뿜어낸다.
잔디밭의 잡초를 뽑는 것도 재미있다. 멀리서 보면 잘 보이지 않는 잡초들도 가까이 가면 잘 보인다. 우리 사이의 마음도 가까이에서 잘 봐야 하는데 멀리서 대충 보고 있지는 않을까. 잡초의 형태에 따라 공략법이 다르다. 망초는 인해전술을 펴기 때문에 무조건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 손 전체를 사용해서 전부를 거머쥐고 잡아당긴다. 어떤 아이는 뿌리째 뽑혀 나오지만, 어떤 애들은 겨우 줄기만 뜯긴다. 일단은 되는대로 모두 제거한다. 이 종류는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잔디 위로 쭉 솟아오르는 특징이 있어 잡아 채기 좋다.
쇠뜨기는 뿌리가 깊이 박힌다. 한그루 한 그루 뿌리를 정확하게 잡고 뽑아낸다. 뿌리에서는 인삼이나 더덕 같은 사포닌의 향이 난다. 좋은데! 민들레도 있고, 쑥도 있고, 사초도 있다. 깔고 앉는 방석이 있다면 나는 하루 종일 잡초를 뽑아도 좋다. 내 마음속 모지리들도 같이 뽑아 건강한 잔디밭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잔디밭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천천히. 적당한 탄성이 있는 잔디가 부드럽다. 타샤 튜더 할머니는 신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숲을 돌아다니셨다 했다. 촉감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젠 나도 내 팔과 다리에 올라앉은 벌레들에 기겁하지 않는다. 그저, 툭 칠 뿐. 아마 해충과 익충을 구분할 수 있게 되면 그마저도 안 할지도 모르겠다. 벌레가, 벌레가 아니라 생명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살충제 찍 뿌리면 그건 내가 도로 다 마시겠지. 벌레가 없는 공간이 과연 깨끗하고 안전한 공간일까? 살충제는 안전할까? 여름엔 숨어 있다 나타난 이렇게나 많은 생명을 따라 내 생각도 마구 자맥질한다. 여름이 이런 거구나. 올해 처음으로 여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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