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Nov 07. 2018

 아들과 대화하는 쉬운 방법

'캐치볼 대화법' '그거 봤어'

어느 평일 오후 자장면집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 일이다. 매일매일 유치원 앞마당에서 온몸이 땀에 젖도록 놀았다. 모래와 땀방울이 섞여 땟국물이 졸졸 흐르는 아들. 집에 갈 때마다 선뜻 나서는 법이 없는, 놀이터가 세상의 전부인 다섯 살. 겨우 달래 집에 돌아오는데, 갑자기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나도 마침 탕수육이 먹고 싶었다. 자장면 한 개, 탕수육 한 개를 시켜 놓고, 아이 겉옷을 벗기고 앉아 물을 따르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우리의 식사가 세팅될 때 즈음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목까지 올라오는 얇은 회색 터틀넥에 트위트 재킷을 입은 멋쟁이 젊은이가 혼자 앉아 있다. 평일 오후 5시 좀 넘은 시각. 이 시각에 아파트 단지 안 중국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젊은이라니. 낯설었다. 깔끔한 중국집이긴 해도, 여기서 소개팅? 데이트? 그는 가끔 고개를 들어 창밖을 살폈다.  


우리가 식사를 시작할 때쯤, 젊은이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손까지 높이 들어 흔든다. 누구를 보고 저렇게 반가운 거지? 오랜만에 여자 친구? 나도 모르게 손끝을 따라 고개가 돌아간다. 어? 젊은이와 비슷한 외모의 남성분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빠다.  머리가 희끗할 뿐, 똑같다. 아빠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드는 아들이라니.


부자는 메뉴를 주문하고, 맥주도 한 병 시킨다. 아빠와 아들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대화를 이어간다.

"아빠, 민수 있잖아요. 민수 아시죠?"

"응, 알지."

"걔가 이번에 어쩌고 저쩌고."

아빠도 하눈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얘기를 듣는 표정이다.


캐치볼 대화법


아빠와 아들이 저런 대화를 이어가려면, 아빠는 아들의 친구가 누가누가 있는지, 그 아이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빠와 아들이 쌓아온 시간의 퇴적물이 비옥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일어날 때까지도 부자는 시종일관 환한 웃음을 머금고 탁구공이 오가듯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아빠와 아들이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퐁퐁 솟아나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걸까.


그날 아빠와 아들의 저녁 식사가 머릿속을 떠다녔다. 나도 부모님이 반갑고 보고 싶지만, 그날의 부자처럼 등장인물 캐릭터와 스토리가 살아있는 대화를 나누긴 어렵다. 그간 지나간 시간들 속에 나는 나대로 살았고, 부모님들은 부모님들의 시간을 사셨다. 사랑만 하지 우린 서로에 대해 잘 몰랐다. 혹시 우린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은 아닐까? 나도 아들이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고 반가워 손을 높이 흔드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가장 내 마음으로 직진해서 달려온 첫 번째 텍스트는 '엄마의 말하기 연습'이었다. 밑줄 치고 입으로 따라 하며 되풀이했다. 머리로 이해하면 다 아는 것 같지만 입 근육을 써서 말하는 습관을 바꿔야 한다. 근육에도 기억이 있다. 안무가들이 지난 안무를 다 잊은 것 같아도 음악을 틀면 몸 근육이 자동반사적으로 춤을 기억해 낸다고 한다. 트와일 라잇의 '천재들의 창조적인 습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운을 읽는 변호사'에서는 실전에 쉬운 예제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캐치볼 대화법. 캐치볼을 할 때처럼 대화를 받아 가볍게 다시 던지라는 거였다. 우리 사이엔 효과가 아주 좋았다.


"오늘 힘들었어."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어?"

"응. 오늘 학교에서 뭐도 하고 뭐도 하고 뭐도 해서 정말 힘들었어."

"어머 그랬구나. 힘들었겠네."

"그래서 좀 쉬다가 숙제할게."

"그래, 그래라."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자 '학교긍정훈육법'의 김성환 선생님께서는 그저 명사만 이야기하라 하신다. 그 옷. 또는 그거 알아. 그렇게만 해도 충분하다고. 아이가 속상한 이야기를 하면, 너무 열심히 들을 필요도 없다고 하셨다. 속상한 표정이라면 "어, 속상했겠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만 해도 관계가 훨씬 부드러워진다고. 이 방법도 우리 사이에 효과가 아주 좋았다.


며칠 전엔 아들이 "엄마, 자존심이 좀 상하지만 엄마가 하는 말은 나중에 생각해 보면 다 맞아. 그래서 그냥 엄마 말대로 하는 게 좋은 거 같아."라고 말했다. 다행이다. 나는 잔소리가 터져 나오려는 걸 꾹 참고, "그래, 맞는 거 같아?"라고 해 줬다. 책으로 배운 걸 근육을 움직여 행동하는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 꼭 크고 멋진 게 아니면 어떤가.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가 몸과 마음과 생각이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도록 돕는 것인데.


http://www.yes24.com/24/goods/61115125?scode=032&OzSrank=1  

http://modernmother.kr

http://brunch.co.kr/@modernmother

http://instagram.com/jaekyung.jeong


작가의 이전글 설탕 20그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