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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Nov 20. 2018

내 마음의 ㄱ, ㄴ, ㄷ

내면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나를 찾는 여행


주말엔 남편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지만, 평일 아침엔 내가 준비한다. 간단하게라도 식사를 챙기고 남편과 아들과 잠깐이라도 이야기를 나누려고 애를 쓴다. 요즘엔 하얀 법랑 밀크팬에 저지방 우유를 넣고 생강청을 더해 따뜻하게 준비하고, 빵과 달걀 스크램블을 곁들인다.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던 그날 아침엔, 남편과 이런저런 일상의 대화를 나누다가, '나랑 안 맞는 사람들' 얘기가 나왔다.  

 

"나랑 안 맞아도 그냥 다 맞추면 편해, 여보."

"어떻게 그게 돼. 화가 나잖아."

"뭐 하러 화를 내. 나를 그냥 물이라 생각하고 유연하게 어떤 그릇에나 담기면 돼."

"왜 그래야 해?"

"그게 더 자유로워. 화를 안내면 그게 더 편해."

말해 놓고도 스스로 많이 달라졌구나 싶다.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을 했을까?

 

내가 자아를 찾아 여행하기 시작한 것은 2년쯤 되어 가는 것 같다. 우울감이 밧줄처럼 온몸을 꽁꽁 감아 옴짝달싹 할 수 없을 때 정신과를 찾아갔다. 밝고 씩씩한 선생님을 뵙자마자 바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분이라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 선생님께서는 상담으로는 우울을 잘 못 느끼시겠다며, 그래도 검사를 진행해 보자 하셨다.

 

일주일 후 결과가 나오자 선생님께서는 정신 분석을 권하셨다. 그런데, 전문 분야가 아니라며 당신께서 해 주실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아니, 이런. 큰 맘먹고 찾은 정신과인데. 난감했다. 덧붙이는 말씀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아 성찰이 잘 되는 편이라 책을 읽고 좋아지는 경우도 많다고 하신다. 이무석 박사님의 책과 김형경 작가님의 책을 권해 주셨다.

 

그저 동생이 오래 아프다 떠나, 이별을 잘 못 해 뭔가 문제가 생겼나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네 자매의 맏딸, 둘째가 가고, 다섯째가 왔고, 그 과정에서 나는 늘 '맏딸'이었지 온전히 '나' 였던 적이 없다. 콤플렉스 덩어리인가 보다, 나.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이무석 박사님의 책과 김형경 작가님, 김혜남 박사님의 모든 책들을 읽었다. 어떤 책들은 두서너 번 읽었다.

 

오렌지 두 방울 떨어뜨린 핑크색이 좋아요
내면의 아이

나는 누굴까. 그게 왜 중요하냐면 내가 누군지 모르는 채로 사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와 똑같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려 몸살을 앓는다. 이 사람을 만나면 내 단점만 크게 보이고, 저 사람이 잘하는 걸 보면 내가 모지리 같아 싫다. 스스로 설 수 없는 무의식들이 모이면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무의식을 의식으로 가져와 재정의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막연한 불안과 강박의 원인이 그곳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내면 아이는 잘 삐치고 쉽게 의기소침해진다. 그 아이는 내 마음 저 구석에서 등 돌린 채 울고 있었다. 살살 달래 데려 오고, 성심껏 돌봐주었다. 어떨 때 기분이 좋은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기역, 니은, 디귿을 익히듯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상처를 회복하고 빙그레 웃기 시작하자 나도 조금씩 달라졌다.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 '아티스트 웨이'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아이가 살아나니, 다른 사람의 감정이 읽혔다. "어머나, 힘들겠다.", "속상했겠다.", "축하드려요!" 같은 말 한마디로 얼어버린 분위기가 녹는 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기분 나쁜 행동에 대해서도 내 마음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렇게 말하면 나는 정말 기분이 나빠." 나도 모르게 교과서적인 모범 문장이 나왔다. 예전엔 꾹 참고, 입을 닫고 미워했다. 그러면 비뚤어진 관계만 남는다. 서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표현하는 편이 나았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언니가 뭔가 달라졌다며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요 녀석, 내 마음이 달라진 걸 어떻게 느끼지? 그래도 알아봐 줘 고맙다. 덧난 상처를 뒤적이느라 아팠고, 에너지를 많이 소진했지만, 그 과정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는 걸 안다. 이제 나는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두 발로 단단하게 땅을 딛고 밖을 바라볼 수 있다.

 

동생이 떠난 후 입술을 깨물며 웃지도 울지도 않기로 결심했던 열두 살짜리가 생각났다. 그동안 나는 감정적 한정치산자로 살았던 것은 아닐까. 헤밍웨이는 소설을 쓰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으로 '전쟁, 불행한 어린 시절, 실연, 남에게 벌어지는 나쁜 일'을 꼽았었다. 그저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있는 거라고,  죽도록 슬퍼도 잘 지내는 법을 익히면 된다는, 그런 위안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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