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Dec 26. 2018

너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

울산바위 같이 한결같은 너에게


아들. 똑같은 얘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내 말이 잔소리처럼 들릴 거라는 걸 나도 안다. 때로는 확성기에서 나오는 목소리처럼 크고 세게, 때로는 집중도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나름의 노력으로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때로는 농담처럼 웃으면서, 때로는 당근책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한 달 게임 금지 같은 강경책을 써도 안 듣는 너는 도대체 뭐냐. 우주 최강이다. 아들 네가 얼마나 꿈쩍을 안 하면 내가 니 얼굴을 볼 때마다 똑같은 얘기를 되풀이 하나 생각해 봤으면 한다.


1학년 때부터 일기에 날짜를 쓰라고 말하지만, 5학년이 끝나가는 지금도 너는 날짜를 쓰지 않은 채로 일기장을 가져온다. 나중에 계약서에 날짜를 빼먹는 어른이 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문제집을 순서대로 푸는 게 좋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해도 너는 니 멋대로 쉬운 것들만 골라 풀어온다. 정말 창의적인 해법이다. 그게 잔머리를 굴리는 건지, 네 뇌는 그렇게 발달하는 건지 아직 나도 모르겠다.  


숙제를 먼저 하고 놀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너는 만화책을 보며 뒹굴거린다. 만화책을 보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다. 시간을 쓸 때에는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남는 시간에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게 낫다. 그건 돈 관리에서도 비슷하다. 저금을 먼저 하고, 남는 돈으로 생활하는 습관을 들이는 편이 좋다. 다이어트도 비슷하다. 수많은 자기 관리 서적과 재테크 책을 읽은 나름의 결론이다. 그래서 할 일을 먼저 하라는 의미로, 숙제를 하라고 하는 거다.


하긴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그런 사람을 한 명 더 알고 있다. 안전벨트를 매라고 매라고 10년 동안 잔소리를 했는데도 매지 않던 끈질긴 한 남자가 있었다. 차를 바꾸니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알람 소리가 나더라. 심지어 벨트를 맬 때까지 그 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라. 기계음에는 "됐어." 하지 못 하고 안전벨트를 매더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습관이 고쳐졌다. 나의 부탁이나 회유, 강권이 벨소리만도 못 한가 자괴감에 빠졌었다. 너도 기계음을 써야 바뀌려나.

엄마를 괴물로 만들지 마라!
우리는 한 팀이다


우리는 한 팀이라는 걸 기억해 줬으면 한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바쁘면 덜 바쁜 사람이 저글링 하듯 그 역할을 맡아 차질 없이 운영되도록 지원하고, 잘할 수 있도록 응원해야 한다. 가족이 서로에게 짐이 되고, 서로를 미워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갉아먹어서야 손발이 잘 맞는 팀이라 할 수 있나. 농구 경기도, 축구 경기도 팀원들의 팀 워크가 좋아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왜 좋은 팀이어야 하냐고?


우린 모두 한 번뿐인 인생을 살고 있다. 아직 10대인 너희들은 이제 시작이라 급할 게 없지만, 인생의 후반전으로 꺾어 돌아가는 엄마 아빠에게는 남은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시간이 더 소중하고, 기왕이면 못 다 이룬 나의 꿈을 위해 그걸 쓰고 싶다. 그래도 우리가 너를 세상에 내놓은 책임감으로 대부분의 내 몫을 너를 위해 쓰고 있다. 부모니까 당연한 게 아니냐고. 네 말도 맞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우리는 좋은 팀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몫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거다. 각자의 본질은 뭘까? 나 어렸을 때는 따뜻한 저녁밥이 기다리고 있고, 내 얘기를 들어주는 가족이 있고, 친절하게 환하게 웃는 얼굴로 가족이 기다리는 그런 집을 꿈꿨다. 우리 세대엔 그렇게 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서, 하루를 많이 노력하며 보낸다. 모든 엄마, 아빠들은 똑같다. 단언컨대 모든 부모는 가족이 서로 사랑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길 꿈꾼다.  


앞으로 얼마나 더 도돌이표 그려진 악보처럼 같은 말을 구간 반복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네 몫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게 내 몫이다. 그래도 어제 가르쳐 준대로 슈톨렌을 깔끔하게 잘라 먹고 돌돌 말아 놓고 간 흔적을 보았다. 엄마가 그러셨다. 애들은 열 번 된다고. 내가 그랬듯 너도 열 번쯤 되면 나처럼 조금 사람 노릇은 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http://www.yes24.com/24/goods/61115125?scode=032&OzSrank=1

http://modernmother.kr

http://brunch.co.kr/@modernmother

http://instagram.com/jaekyung.jeong


작가의 이전글 겨울에 듣는 봄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