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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an 02. 2019

부모 노릇

내 인생은 나의 것


처음 해 보는 일들


유치원 놀이터 앞에는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있었다. 그날은 나무 아래서 작은 파티가 벌어졌다. 떡볶이도, 순대도, 튀김도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순대를 본 아들은 아까부터 먹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한 번 먹어 봐. 혹시 너무 맛있을 수도 있잖아. 맛없으면 다음부터 안 먹으면 되잖아?""그럴까?" 조심스럽게 순대 한쪽을 집어 입에 넣는다. 천천히 씹더니 "맛있는데?" 하며 손이 빨라진다.


이 날의 일은, 처음 먹어 보는 음식에 도전할 때마다 인용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동태찌개에서 고니를 만났을 때도, 순대 옆에서 염통과 간을 만났을 때도, 처음으로 추어탕을 먹던 날도 우린 유치원 앞의 떡볶이 파티를 떠 올렸다. 낯선 음식을 먹고 맛있었던 경험은 무엇이든 시도해 봐야 알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나는 새로운 시도는 늘 부추기는 편이다.


아들과 산에 올랐을 때 자기 허리춤 높이의 바위에서 내려올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한 번 해 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고 부추긴 것도 나였다. 용기를 내어 풀썩 뛰어내린 아들은 뒤돌아 보며 "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할 수 있네?"라는 말을 남기고 뛰어내려 갔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언젠가는) 용감하고 씩씩하게, 쇄빙선처럼 헤치고 나아가는 거침없는 인물이 될 거라 믿고 있다.


아들은 몸과 마음이 폭발적으로 자란다는 제2 성장기, 사춘기 초입에 있다. 이제 몸도 제법 자랐으니, 자기 꿈을 향해 부지런히 전진해 주면 좋겠는데, 멋진 아들은 드라마 속에만 있는 건가보다. 현실의 아들은 빵 먹은 비닐봉지는 그곳에 그대로, 양말을 벗은 건 책상 아래 구석에, 식객과 초밥왕과 먼 나라 이웃나라는 마구 섞여 여기저기 쌓여 있다. 부모를 그대로 닮는다면서요. 저희는 안 그런단 말이에요.......

부모 노릇


나름대로는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칭찬해 주기 바라는 눈치로 내 앞에 서 있다. "엄마, 안아조라. "하면서. 나는 마지못해 팔을 벌려 품에 안는다. 자기 길을 찾아 씩씩하게 걸어가면 좋을 텐데, 우리 아들의 씨앗은 늦게 피는 꽃인가 보다. 베토벤의 아버지가 회초리를 들고 서서 피아노 연습을 시켰다는 이야기,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 얘기,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능은 찾지 못한 유전 같은 거라 말씀하신 게 귓가에 뱅뱅 맴돈다.


유럽 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땡땡의 작가 에르제는 '부모님의 말에 따르면 내가 유일하게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순간은 연필과 종이를 손에 쥐었을 때라고 한다. 나는 7살 때 거리의 소년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을 끄적거렸었다. 드로잉은 내가 이야기를 전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수학 시간에는 연습장 칸을 낙서들로 하나하나 채우곤 했다. 모든 것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라고 기록한다.


아들의 수학 문제집에도 그림이 많은데, 시험지에도 낙서가 있는데 혹시...? 아들이 사는 인생을 그대로 수용하는 게 성숙한 사랑이라고 믿는다.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수용해 주는 것. 올해는 아들이 어려운 숙제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뒹굴뒹굴하는 동안 창의력이 자란다지만, 빈둥빈둥하는 남학생을 지켜보는 건 힘이 든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럴까 봐 걱정이 된다.


아무래도 자꾸 아들에게 시선이 가는 걸 보니, 일이 적은 거 같다. 내가 내 삶에 집중하면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 한눈을 팔 여유가 있으니 자꾸 쳐다보게 되는 거겠지. 미친 듯이 열심히 일하면 아들에게 아무런 잔소리를 안 할 수 있다. 결국 너는 너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사는 거다. 우린 가족이지만 서로 다른 인생이다. 아무래도 새해엔 업무량을 더 늘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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