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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an 23. 2019

만두

나의 소울푸드

홈메이드 만두

아들과 나는 만두를 좋아한다. 특히, 딤섬이 앞에 있을 땐 양보라곤 없다. 젓가락 싸움이 벌어질 만큼 치열하다. 샤오롱 빠오의 경우에는 두 판을 주문할까 세 판을 주문할까 늘 망설인다. 생강채가 들어간 간장에 찍은 딤섬을 숟가락에 올려 육즙 먼저 쪽 마시고,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소룡포를 입안에 떨어뜨리면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딤섬집 문 앞에선 위가 수박만큼 크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이 얘기를 들은 중국어 선생님께서 만두는 집에서 만들어도 맛있다고 하신다. 신선한 돼지고기와 새우, 부추, 소금, 후추만 있으면 된다고. 밀가루도 소금 조금 넣고, 따뜻한 물로 반죽을 해서 밀대로 민 다음, 작은 밥공기로 눌러 만두피를 만들어 만두를 빚으면 아주 맛있다고 숨도 한 번 안 쉬고 말씀하신다. 식용유 듬뿍 넣어야 한다고 덧붙이셨다. 엄마가 만드는 만두에는 기름 넣는 걸 못 봤는데. 선생님께서는 내 식욕과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셨다.

나는 만두피는 그냥 사고, 신선한 돼지고기와 새우, 부추를 구입했다. 중국 만두와 엄마 만두의 비교를 위해 두부와 숙주도 샀다. 장을 보니 봉투가 꽉 찬다. 만두를 만들다니... 괜한 짓을 한 거야. 그냥 사 먹을걸. 이미 재료를 구입했으니까 어쩔 수 없어. 환불하면 여러 사람을 번거롭게 하잖아. 그냥 만들어 보자. 체념한다. 자기가 벌인 일은 스스로 수습해야지.

집에 오니 내 손이 저절로 움직인다. 큰 보울을 두 개 꺼내 돼지고기 간 걸 털어 넣고 소금, 후추를 뿌린다. 새우를 다지면서, 베보자기를 찾고 있다. '내가 이걸 왜 찾고 있지?'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내 손은 이미 두부를 베주머니 안에 넣고, 능숙하게 물기를 짜고 있다. 혼자 춤을 추는 다듬이 방망이 같다. 내 손. 뭐지...? 나 이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내가 만두를 만들어 먹은 적이 있던가?

좋아하는 딤섬집의 샤오롱빠오와 샤오마이.
큰딸이라서

그때쯤 형광등처럼 깜박이던 기억에 불이 켜졌다. 어렸을 때 엄마가 살림에 내 손을 많이 빌리셨다. 마른 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치는 것도 내 일이었고, 수시로 두부도 짰고, 나물을 짜라고 했었다. 그게 데친 나물일 때는 뜨거워 손이 데일 것 같았다. 어린 손으로 애를 써도 엄마가 원하는 만큼 보송하게 되지 않아 꼭 싫은 소리를 들었다. 한약도 베보자기에 넣어 짜고, 김치도 짜고, 이것 저것 참 많이도 짰다.

일손이 부족한 엄마를 많이 도왔다. 아니, 엄마가 많이 부려 먹었다. 여덟 살쯤 되었을까, 섣달 그믐날 열두 시가 넘어서까지 만두를 빚다 상 앞에서 졸았던 기억도 난다.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 만두피를 들고 졸고 있으니 그제야 가서 자라고 했다. 맏딸이 살림밑천이라는 그런 말, 싫었다. “네가 큰 언니잖아!” 큰 언니는 뭐든 잘하고, 양보해야 하고, 도와야 하고, 엄마 대신 뭔가를 해야 하고. 큰 딸 싫었다.

얼마 전부터 아들과 같이 배드민턴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아들은 나를 보고 “헐, 배드민턴도 잘 쳐. 엄마는 못 하는 게 없어.” 한다. 나는 정말 아들 말대로 뭐든 다 잘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웬만한 건 다 해 봤다. 그래서 잘은 못 해도 대충 할 줄 아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창의력이 자라도록 뒹굴뒹굴하는 걸 지켜보는 대신 뭐든 해 보도록 시키는 게 좋은 건가. 

내겐 엄마한테 노동력이 차출돼 잔소리를 들으며 못 이겨했던 선행 살림이 몸에 배어 있나 보다. 큰 딸이라 싫었지만, 덕분에 뭐든 할 줄 알게 되었으니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맞물려 있다. 나는 두 종류의 만두를 아들과 함께 빚었다. 힘들다며 도망가는 아들의 목덜미를 잡아 끝까지 마무리하게 시켰다. 빚은 만두는 하루 만에 모두 먹어치울 만큼 맛있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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