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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Apr 03. 2019

국가자격증 도전기

4전 2승

1.  2종 보통 운전면허증

  스무 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엄마는 운전면허증을 따라고 성화셨다. 남들 하는 건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못 말리는 우리 엄마. 나는 하고 싶지 않다고 우겼지만, 엄마는 늘 그렇듯 학원에 등록해 놓고 가라 했었다.

  학력고사를 넘긴 싱싱한 머리로 필기는 한 번에 붙었지만, 실기는 일 년이 넘도록 재시험을 보았다. 수동기어는 클러치 밟는 타이밍이 1초만 어긋나도 야멸차게 시동이 꺼졌다. 요즘 차들처럼 조용히 다시 켜지면 좋을 텐데, 그 옛날의 차는 토악질을 하는 것처럼 앞뒤로, 온몸을 떨어 시치미를 뗄 수도 없었다.

  결국 인정 기간이 1년인 필기시험을 다시 보고야 겨우겨우 운전면허를 땄다. 그래 놓고 연수를 받지 않아, 그 운전면허증은 그야말로 단지 신분증에 머물렀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건, 시간과 비용을 허공으로 한 장 두 장 날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달았다.

2. 유치원 2급 정교사 자격증

  대학교 내내 쫓아다니던 잡지사에서 계약직 기자 자리를 제안해 주셨다. 하필이면 교생 실습 기간과 겹쳐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조금 아깝긴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택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버리기로 했다.

“교수님, 저 취업 때문에 실습을 못 할 것 같습니다. 자격증을 포기하겠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필수 과목이기 때문에,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이 안 됩니다.”

  두두 두둥. 선택지에 없던 일이다. 적성에 맞지 않지만 입시를 또 치르긴 더 싫어 겨우겨우 다녔는데, 또 다닐 수는 없다. 취업을 포기하고, 아침마다 울며 교생 실습을 하던 한 달. 그렇게 겨우 대학을 마치고, 졸업과 동시에 얻은 유치원 2급 정교사 자격증은 그대로 앨범에 들어가, 한 번도 빛을 본 적이 없다.

3.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스타크래프트로 스트레스를 풀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화가 나면 요리를 했다. 주로 빵이나 브라우니, 머핀을 굽는 정도로 해결이 되었지만, 스트레스 압력이 높아지면 더 어려운 요리가 필요했다. 김치류가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그동안 화가 가라앉아 딱 좋았다. 열무김치, 배추김치, 깍두기, 파김치 등등 많은 김치를 담갔다.

그때 즈음엔 남편이 집에서 새벽 6시 20분에 집에서 나섰는데, 뒷모습이 안쓰러워 매일 새벽에 일어나 새 밥을 차려 줬다. 콩나물국밥에, 황탯국에, 미역국에. 그러는 김에,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따 볼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한식조리기능사 클래스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의 손놀림은 나의 것과는 초속이 달랐다. 나의 칼질은 1초에 한 번이라면 그들의 칼은 1초에 서너 번, 열 번까지도 움직였다. 설거지의 스피드도 비교가 되었다. 몸에 밴 근육의 움직임은 꾸밀 수 없다.

결국, 필기시험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으나, 실기 시험에 두 번 도전하고, 두 번 다 탈락하며 포기했다. 2년의 필기 유효기간은 날아갔다. 취미는 취미로 지속할 때 더 아름답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4.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

식물들과 함께 살다 보니, 무성하게 자란 가지를 정리해 줄 일이 생긴다. 싹둑 잘라내지만, 여전히 싱싱하게 살아있는 잎들이 미안하고 아까웠다. 이것들을 살려볼 수 있는 게 없을까? 꽃꽂이에 응용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너무 초록색으로 가득 차다 보니, 더 다양한 색상을 즐기고 싶기도 했다.

기왕 배우는 거, 자격증 반으로 가자. 사실, 뭔가 시험을 봐야 열심히 하게 되는 게 있다. 객관식 4지 선다형 문제가 익숙한 우리 세대에게는 비슷한 정서가 흐르나 보다. 화훼장식기능사 클래스에는 비슷한 또래들이 모여 있어, 수업 시간이 은근히 기다려 질만큼 재미있고 유익했다.

실기 시험 과제 중에는 부케가 있는데, 멀쩡한 생화의 목을 뎅강 잘라 철사로 꽁꽁 싸 맨 다음, 다시 플로럴 테이프로 감싸 각을 잡아 연출한다. 이쑤시개를 놓고 철사를 감는 연습을 하기도 하고, 생화를 자른 줄기를 갖고 연습을 하기도 했다. 손에는 굳은살이 배기고, 물집이 생겼다 터지기도 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와중에 시험 준비를 하느라, 무리가 되었지만, 내 실력은 잘라낸 꽃의 밑동만큼 자랐다. 어쩌면 노력은, 몸을 쓰는 연습은 이렇게 정직할까? 아무래도 한 번에 통과하긴 힘들어 보이지만, 이번엔 동지들이 있으니 또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날렵하고 야무진 손놀림을 갖고 싶다.

색깔매치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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