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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Mar 27. 2019

내 마음의 기생충

응애의 출현

응애의 출현


동그란 손바닥을 흔들며 춤추는, 흥 많은 식물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를 그리고 싶어 자그마치 23년 만에 붓을 들었다. 일상을 살며, 하고 싶은 일들을 끼워 넣는 건, 저글링 공 하나를 끼워 넣듯 아슬아슬하다. 공에 몇 번 얹어 맞으면서 겨우겨우 박자를 맞춰 본다.

코튼 25%가 함유된 파블리아노 300그램 중목지 위에 파버카스텔 3H 연필로 외곽선을 그린 후, 톰보우 지우개로 지워가며 스케치를 완성했다. 화홍 4호 동그란 붓으로 신한 전문가용 24색 물감을 담은 팔레트의 녹색 계열 물감을 갠다. 투명한 물맛이 나는 컬러를 보니 기분이 덩달아 맑아진다.

“아, 예뻐! 이렇게 예쁠 줄 알았어!” 혼잣말이 튀어나온다.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가 초록색 옷을 입는 과정도 남기고 싶어, 해가 잘 드는 창 앞으로 그림을 갖고 간다. 빛을 잔뜩 받은 그림은 환하다. 찰칵. 그런데 그림 옆에 부지런히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가 보인다. 이걸 그냥 둬야 하나, 눌러야 하나.

식물이 숲처럼 많은 우리 집에서 벌레는 경계 대상이다. 크기가 1mm쯤 되는 조그만 녀석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벌레보다도 속도가 빠르다. 바닐라 색상을 띤 작은 거미 같은 녀석이 종이 위로 올라온다. 그림 위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 휴지로 살살 쓸어, 도화지 밖에서 꾹 누른다. 식탁 옆에서도 두 마리를 잡았다.

보주 주방에 있는 꽃꽂이 재료들을 점검하는데, 편백나무 사이로 거미줄이 보인다. 그 위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바닐라 색 벌레들이 보인다. 악 아악! 보자마자 당황스럽다. ‘침착하게, 침착하게’를 중얼거리며 장갑을 찾아 꼈다. 그리고, 감정을 잔뜩 담아 때려잡았다. 이건, 응애잖아! 울고 싶다. 응애는, 일단 식물에 엉겨 붙으면, 박멸이 어려운 해충으로 알려져 있다.

화훼장식기능사

화훼장식기능사 실기 준비를 위해 꽃을 사다 연습 중이었는데,  편에 응애가 따라온 모양이다. 지인은 리시안셔스 꽃잎을 들춰가며 핀셋으로 응애를  마리씩 잡아 냈다고 한다. 식물에 옮는 해충이니, 그야말로 새빨간 비상사태다.

급기야 내가 예뻐하는 아스파라거스 잎에서도  마리, 분갈이  몸살을 앓고 있는 아로우카리아 잎에서도  마리 보인다. ‘나는 너처럼 기생하는 곤충은 싫어!’라고 도리질 친다. 미워서 맨손으로  누른다. 내가 그동안  식물들을 어떻게 관리해 왔는데, 열불이 난다.

그런데, 응애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부지런히 일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닐까. 식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 응애의 습격에 KO 당한  아니지 않나. 나는 ,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있나. 벌레가 생겼으면 힘닿는 데까지 잡으면 되지. 그래도  되면 약을 치면 되지.

그렇지 않아도 시험 준비가 벅찼는데, 응애 덕분에 꽃에 오만정이 떨어지며 열정이 식었다. 혹시 나는 실기 시험에 자신이 없어서 응애를 제물로 삼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뭔가 하기 싫을 때마다 핑곗거리를 찾았던  아닐까. 마음을  켜씩 들춰가며,  마음속에 응애를  마리씩 잡아 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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