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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Apr 10. 2019

봄맞이

봄의 단상

  유리창으로 넘어오는 햇살의 각도가 예각에 가까워지며, 일조량이 늘고 있다. 겨우내 숨어 있던 먼지에 그림자가 드리우며, 존재가 도드라진다.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대청소를 하게 된다. 겨우내 빈 공간에 쑤셔 넣었던 잡동사니들도 후벼 내, 제 자리를 찾아 주어야 한다.

  냉장고도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 김치통을 비우고, 그 자리에 쌀통을 넣어야 한다. 벌레가 생기는 것보다는 냉장고 속에서 맛이 조금 덜 해진 쌀이 낫다. 조금씩 자주 사면,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수박을 좋아하는 식구들을 위해, 냉장고를 헐겁게 정리해 공간을 비워 두어야 한다.

  양문형 냉장고 하나로도 충분했던 우리의 식생활은 빌트인 김치 냉장고가 생기며 두 개의 냉장고로 늘었다. 그만큼 살림 솜씨도 늘었으면 좋으련만, 그 공간만큼 쌓인 식재료는 나의 재고 관리 역량을 넘어섰다. 군살이 불어나듯 공간은 채워지는데, 꽉 찬 냉장고는 숨이 막힐 만큼 스트레스가 된다.

  잔뜩 장을 봐 집으로 옮겨 오는 수고로움에, 냉장고에 옮겨 넣는 시간과 에너지, 분리수거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수고로움을 매일 반복하다 보면, 과연 이게 위생적이며, 과학적인 일인지 의심이 생긴다. 세 식구 먹거리에 나오는 일회용품 쓰레기를 보면 망연자실하다. 플라스틱을 줄이자고 여러 가지 도전을 하지만, 장을 보면 늘 한 보따리의 쓰레기가 나온다.

에너지를 줄이는 일상생활

  나의 식사로는 어린잎 야채 씻어 아보카도 반 개를 슬라이스 하고, 모차렐라 치즈 몇 조각 얹어, 따뜻하게 우린  페퍼민트 티 한 잔이면 충분하다. 약간 모자라다 싶으면 벌꿀을 넣은 그릭 요구르트 디저트를 더하면 호사스럽다. 속도 편하고, 일하는 데 큰 불편 없을 만큼 에너지도 충분하다. 식사 준비를 위한 가열도 필요 없고, 설거지도 간편한 데다가, 정리정돈에도 최소한의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간다.

  샐러드로는 어린잎 루꼴라를 좋아하는데, 그 야채는 플라스틱 통에 담겨 판매가 된다. 그 플라스틱 통을 버릴 때마다 양심이 부대낀다. 내가 한 번 먹자고 이 큰 통을 버려야 하나. 다른 방법은 없을까. 올여름에는 텃밭에서 야채를 키워, 일회용품으로 포장된 샐러드 야채를 대신해 봐야겠다. 4월 15일 전후로는 모종을 심어야, 여름 내 키워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 줄여야겠다. 자주 먹는 루꼴라와 로메인, 깻잎 같은 푸성귀를 키워 일회용품을 줄여 봐야겠다. 식구들이 자주 먹는 토마토와 더덕을 더하면 플라스틱이 좀 더 줄겠지. 아스파라거스도 마당 한 귀퉁이에 심어 두면 해마다 먹거리를 준다고 한다.

  할 일은 점점 더 많고, 익숙해지려면 당분간 몸은 좀 더 고단하겠지만, 일상이 굵은 마사토라면 새로 더해지는 일들은 입자가 작은 상토 같아서 톡톡 잘 털어 넣으면 또 금세 메워진다.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생각나는 고래와 북극곰에게 덜 미안하고 싶다. 아예 쓰레기가 제로가 된다면 떳떳할 수 있지 않을까. 도시 생활에서 쓰레기 제로인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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