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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Apr 17. 2019

이만하면 됐다

스스로 정하는 한계

옥상 잔디밭의 이상과 현실


  우리 집 옥상에는 잔디가 깔려 있다. 푸른 옥상은 내게 로망이었지만, 현실에서는 가혹한 노동이다. 잔디 관리하는 일만 하며 일상을 지낼 수 있다면 이상에 가까울지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이자 아내이고, 딸이자 며느리이고,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이자 작가이다.

  게다가 잔디는 까다롭다. 물을 좋아하지만, 배수가 잘 되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척박한 땅은 싫어하고, 땅은 부드러워야 한다. 보통의 식물은 뿌리를 건드리면 아주 싫어하는데, 잔디는 뿌리를 끊어 줘야 한다. 잎을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은 관엽식물과는 달리 잔디는 자주 깎아 주는 걸 좋아한다.

  잔디와 잡초의 잎이 함께 잘리면 잡초는 광합성을 못해 세가 약해져 일거양득이라고 한다. 잡초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잔디를 자주 깎는 게 좋다지만, 알면서도 작년에는 잔디를 한 번도 깎아 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망초가 신나게 자랐다. 그 풀이 우리 들녘을 뒤덮은 후에 나라가 망해서 ‘망초’라 부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분 나쁜 이름이다. 서늘한 기운이 싫어 뽑고, 뽑고, 또 뽑았다. 잔디밭에서 고개를 들이미는 망초는 살모사 대가리처럼 느껴졌다. 지독하게 솟아났고, 나도 독하게 뽑았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이 그대로 내리쬐는 옥상에서 풀을 매며, 내 인내심도 한 뼘은 자랐다.

  올해 올라 간 옥상의 잔디에는 사이사이에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작년에 잔디를 한 번도 못 깎아 주었더니 바람도 통하지 않고, 그늘이 생기니 이끼 생육의 최적의 조건이 된 모양이다. 비릿한 냄새가 싫다. 일단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두 개를 들고 올라가 이끼를 걷어 냈다.

몸을 움직이는만큼 정직하게 생기는 공기 구멍
내 방법대로 사는 삶


  단단하게 굳어 버린 땅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큰 기계를 사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테지만, 보관과 관리에 드는 품이 번거롭다. 내 몸을 움직여 해결하는 게 간편하다. 신발에 끼워 신는 덧신을 구입했다. 바닥에는 7센티미터 정도 되는 못이 13개 있어, 걸을 때마다 26개의 공기구멍이 생긴다. 잔디를 자분자분 밟아 본다. 못이 달린 신발이 지나간 땅은 정직하게 그 수만큼 구멍이 생긴다.  

  흙이 단단할 때 땅을 후비면 다리에 힘이 더 필요하고, 비가 온 후라면 그저 걸어 다니는 것으로 충분하다. 비 오고 하루 지난 땅은 예상보다 단단했다. 그냥 비가 내릴 때 밟을 걸 그랬다고 후회를 하지만 이미 늦었다. 30평을 튼튼한 내 두 다리로 밟는다. 이만하면 됐을까. 코에 땀이 맺힌다.
  
  이만하면 됐겠지 싶은데, 단단한 땅이 또 느껴진다. 그럼 또 밟는다. 한 발로 부드러워지지 않는 땅은 두 발로 모둠 뛰기를 해 본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 땅은 스카이콩콩 뛰듯 두 발을 구른다. 이만하면 됐어. 아니야, 이만하면 됐겠지? 아니야. 내 안에서 계속 말소리가 들린다.

  30평을 촘촘하게 걷다 보니, 덧신을 신은 발이 아파온다. 내 마음은 옥상의 땅을 모래처럼 흩날리게 부술 기세다. 그걸 알고 내 발등의 피부가 먼저 벗겨졌다. 아이코 야. 또 마음이 앞섰구나. 그래도, 몸이 만드는 정직하고, 조용한 결과물이 마음에 든다. 내게 맞는 가장 좋은 방법. 비단, 잔디 관리에만 그럴까.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 형편에 맞는 것, 내 시간과 소용에 맞는 것. 빗자루와 쓰레받기 대신 손으로 쓸어 담는 게 빠르고, 큰 소리가 나는 잔디 깎는 기계보다 낫으로 쓱 베는 게 조용하고 정확하다. 올해 찾은 내 방법이 바쁜 일상에서도 잔디 관리를 가능하게 해 주면 좋겠다. 올여름엔 진한 잔디 향을 한 숨 쭉 들이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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