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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Apr 24. 2019

나무젓가락 지지대

그저 곁에 서서 기댈 곳이 되어 준다면

  웃고 있는 거미 두 마리

  친구 딸이 그림 대회에 나가 두 번째로 큰 상을 받았단다. 어떤 그림이길래 상을 받았을까 궁금해 물었더니, 다행히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의 친구 딸은 발그레한 볼을 하고, 자기 몸통을 가릴만큼 큰 그림을 들고 있었다.

  그림 속엔 통통하게 살찐 거미 두 마리가 웃고 있었고, 머리 위엔 말풍선이 떠 있다. 사이좋게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 동글동글한 머리, 가슴, 배를 가진 거미들이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활짝 웃고 있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 얼굴에 웃음이 배어 나온다. 파란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떠 있고, 하늘과 땅 사이에는 무지개다리가 놓여 있었고, 물맛을 살려 색상의 농도와 채도를 조절했다. 수풀은 곱하기 모양의 패턴으로 표현했는데, 멀수록 모양이 작고, 가까울수록 커져서 원근감도 느껴졌다.

  아이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어떤 기분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그렸을지 상상하게 되는, 자기만의 표현법이 경쾌하다. 그 그림을 보며 아이의 머릿속 세상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유치원 때에는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지만,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싶고, 글도 쓰고 싶어 한다. 미술을 전공한 엄마는 그림에 재능을 보이는 딸이 썩 내키지 않고, 아빠는 미래에는 디자인을 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넷스케이프의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은 “성공한 CEO들 가운데 상위 25퍼센트에 속하는 기술을 3가지 이상 갖추지 못한 사람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한다. (타이탄의 도구들, 116페이지) 그림도 잘 그리고, 뮤지컬 배우도 하고, 글도 쓰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는 말이 된다.

길게 러너를 늘어뜨린 접란
나는 그저 나무젓가락

  작년 여름, 잘 자라던 접란이 갑자기 비실 비실대며 겨우 한 뿌리만 남기고 물렀다. 모두 버리고 신경을 끄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잠깐 고민했지만, 그래도 생명이 남아 있는 것은 살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신경 쓰며 관리를 해 주었는데도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잎이 저쪽으로 이쪽으로 머리채가 왔다 갔다 한다. 식물은 줄기가 흔들리면 그걸 바로잡는 데에 온 에너지를 써 성장이 느려진다. 흔들리지 않게 옆에 있는 식물 가지에 잎을 얹어 지지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래도 튼튼하게 바로 서지 않았다.

  줄기 옆에 지지대가 필요했다. 나무젓가락 하나를 찾아, 뿌리가 다치지 않게 살살 돌려가며 조심스럽게 흙 속으로 꽂아 주었다. 녀석은 바로 그거야! 하는 것처럼 바로 잎이 두꺼워지고, 광택이 돌기 시작했다. 심지어 올봄엔 길게 러너를 뻗어 새끼를 네댓 개 생산했다. 그저 한 뿌리 살아남은 접란 옆에 나무젓가락을 꽂아 주었을 뿐인데.

  어쩌면 부모의 역할도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그저 마음 놓고 기대기만 해도 아이들은 신나게 자라는데, 뿌리를 잡아당겨 키를 늘리고 있는 건 아닐까. 엄마의 역할이 처음인 나는 혹시 접란인 아이에게 살구나무처럼 자라라고 하는 게 아닌지 조심스럽다. 디자이너가 되길 바라고, 뮤지컬 배우가 되길 바라도, 아이는 결국 자기의 소명을 찾아 씩씩하게 걸어갈 거라 믿어야 한다.

  접란인지, 살구나무인지, 그건 지금은 모르겠다. 아이가 자기 성장을 위해 얼마나 노력할지도 알 수 없다. 재능을 빨리 찾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지금까지도 갈팡질팡하는 나를 보면 아마 평생 배우고 노력하며 사는 게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엄마는 저렇게까지 노력하면서도 또 노력하는구나. 엄마는 속상할 텐데 포기하지 않고 또 하는구나. 엄마는 또 뭔가를 하는구나.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삶의 자세를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것 밖에. 내 삶이 아이에게, 조카들에게, 친구 아이들에게, 아이 친구들에게 나무젓가락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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