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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Dec 19. 2019

고모, 안녕히 가세요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나의 유년기엔, 동생의 투병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잘 통하던 사람, 손 아래 동생. 바로 그 아이에게 악마의 손길이 닿았다. 이유는 모른다. 우린 함께 엄마가 해 주시는 밥을 먹었고, 함께 놀며 지냈는데, 유난히 그 아이에게만 그 병이 몰아쳤다. 처음엔 맹장인 줄 알고 배를 열었으나, 아니어서 당황했고, 다행히 신장에서 이상을 발견하고, 조직을 제거했다. 뭔지도 모르고 300그램 가까이 제거한 그 조직이 바로 암 덩어리였다.  

  그래도 생존확률이 90%라 했다. 우린, 그때부터 한 마음이 되어 투병을 했다. 함께 소뼈를 고은 국물을 마셨고, 꽃가루에 꿀을 버무린 약을 먹었다. 인삼을 동그랗게 말아 환처럼 만들어 사탕 대신 씹어 먹었다. 동생이 수술하고 입원했던 한 달은 외할머니께서 도와주셨고, 외할머니가 편찮으시던 때엔 고모네 집으로 가 함께 생활했다. 여름방학 때는 강원도에 있는 고모댁으로 떠났고, 학기 중엔 가까운 고모댁에 신세를 졌다.

  집을 떠나, 강원도의 고모댁에 가는 건 조금은 반가웠다. 고모댁은 슈퍼마켓을 하셨는데, 우리가 가면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곳간을 열어 주셨다. 사촌 언니 말로는, 우리가 와서 열어주신 거라 했지만. 서주 아이스크림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집을 떠나는 불편쯤은 참을 수 있었다. 돌도 뜨겁게 만드는 한여름에 태양열에 달궈진 버스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한참 가면 멀미에 시달려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동생이 집에서 편히 쉬도록 그렇게 해야 했다.

  동생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신장암은, 90%의 생존확률로 시작했지만 결국 이 년 남짓 견디다 새드 엔딩으로 끝났다. 아무리 기도해도 내 얘기를 들어주시지 않던 천주님, 하나님. 그 커다란 상실감은 그 주변의 기억을 함께 삼켰다. 마치 우리에게 없었던 존재인 것처럼 그 아이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고, 그 기억도 함께 소멸한 줄로 알았다.

그리고 삼십 년도 넘게 지났다.

  올해 유월, 나의 막내 남동생이자 엄마 아빠의 늦둥이 막내, 경주 정 씨 4대 독자가 결혼하던 날, 강원도 고모님께서 결혼식에 오셨다. 어느덧 80대가 되신 고모님 세대에서는 ‘대를 잇는 독자’란 여전한 의미가 있다. 유난히 막내를 예뻐하셨고, 간암 투병 중에 온몸의 힘을 그러모아 나들이하셨다. 꼭 와보고 싶어서 몇 날 며칠 컨디션 조절을 하셨다고 했다. 한눈에도 몸이 작아지셨다. 시간이 많지 않겠구나.
 
  늘 침착하시고, 눈이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강원도 고모는 화를 내는 법이 없으셨다. 베트남 전에 출전하셨던 고모부께서 술을 드시고 큰 소리로 뜻 모를 말씀을 하셔도 늘 평정심을 유지하셨다. 그 맑고 곧은 성정으로 기어이 딸 넷을 훌륭하게 키워 내셨고, 손주도 반듯하게 돌보셨다. 그러면서도 62세부터 그림을 그리셔서 8번의 전시회를 했으며, 화가가 되셨다.  

  고모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기어이 아픈 내색 한 번 없이, 자식들 밤잠 한 번 깨우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숨이 멈추던 그 순간에도 지방에서 올라오는 딸을 기다리며 숨을 끌어 쉬시다, 힘들면 이제 가셔도 된다고 소리치니, 그제야 숨을 내려놓으셨단다. 혹시 내게도 고모처럼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정 씨의 피가 흐르는 건 아닐까. 명치 즈음에서 단단한 자부심이 올라온다.  

  온 가족이 고모의 침대에 둘러 서서, “사랑해요!”라고 끝까지 외쳐드렸다고 한다. 나도 동생과 그렇게 이별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아이도 나도 덜 외롭지 않았을까.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슬프다. 한 번이라도 더 보고, 한 번이라도 더 안아 볼 걸... 고모, 안녕히 가세요. 저는 고모의 맑은 눈이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아요. 나중에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때, 방학 때마다 품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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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은평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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