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Jan 08. 2020

다움으로 다음을

마이클 케인의 명배우의 연기수업

  영화 <유스> 속 두 배우가 기억이 난다. 세계적 지휘자 역을 맡았던 마이클 케인과 감독 역의 하비 케이틀의 뒷모습 너머로 알프스 산맥의 산세가 춤사위처럼 흐르던 신이 기억에 남는다. 천상에서 한 바가지 떠 온 듯한 자연환경 속의 럭셔리한 스위스 호텔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던 영화다. 하지만, 누워 편안하게 감상하다 벌떡 일어나 앉을 만큼, 어이없게 슬픈 영화였다.


  그 영화 속 주인공이었던 배우 마이클 케인이 쓴 책 '명배우의 연기수업'을 읽었다. 직업인으로서의 배우를 조명해 놓은 책이었다. 몸과 몸으로 만나 어떻게 일하는지가 궁금해 찾아 읽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이미 촬영이 끝난 영화의 재촬영이 정말 어렵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보통 영화의 편집은 모든 장면의 촬영이 끝난 후 이루어질 때가 많은데, 그 시기의 배우들은 종종 다음 영화의 캐릭터 속으로 걸어 들어가, 새로운 작품을 촬영하고 있다고. 이전 영화를 촬영할 때의 감정, 그때의 표정, 소품, 의상, 분장을 떠올려 똑같이, 아니 감독의 요구에 맞춰 그때보다 더 잘 해내기란 정말 어렵다고 했다. 그래도 그걸 해내야 배우라고.


  책을 쓰고 난 후, 작가도 비슷하다. 나의 경우엔 대단히 총명하지 않은 노력파이기 때문에, 머리 용량에 한계가 있다. 다 잊어야 다음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책을 탈고함과 동시에 다 잊어버리려고 한다. 추가 원고의 요청이 있거나, 글 내용에 대해 확인을 요청할 때 바로바로 생각이 나지 않아 민망해진다.


  요즘엔 지난 원고 파일을 모니터 두 개에 열어, 쓰고자 하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나 소품을 CTRL+F를 눌러 키워드로 검색한다. 중복되는 내용이 있는지 재차 확인하고, 그런 내용이 있으면 단락을 수정하고, 심한 경우엔 글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경우도 있다. 결국은 지난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 집중해야 끊임없이 전진하는 현재의 이야기를 동시대적인 언어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 손을 떠난 원고는 그저 잊어버린다. 이후, 각 영역에서 프로들께서 더 적절한 줄질과 사포질을 더해 세상에 쓸모 있는 책을 만들어 주실 거라 믿는다. 어쩌면 우린 각자의 역할을 이행하는 배우들은 아닐까. 작가도 각자의 감수성과 문체가 다르지만, 편집자 역시 각자의 업무 스타일과 개성이 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자기다움으로 다음을 준비한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라는 '명배우의 연기수업'속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하루는 촬영장 앞으로 예고 없이 관광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고. 다른 배우들은 다 그냥 지나쳤는데, 마이클 케인은 얼마나 함께 하고 싶으면 이렇게 왔을까 싶어, 촬영장에 도착한 관광버스의 손님들과 일일이 서명하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관광버스를 운전했던 사람은, 전문 기사가 아니라 할리우드의 유명한 캐스팅 디텍터였다. 오늘 아침에 무심결에 지나친 누군가가 어떤 사람일지 알 수 없으니, 가능한 한 그저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라 했다. 대배우이기 때문에 뭔가 다른 것을 직감했을까, 누구에게나 친절했기 때문에 대배우가 된 걸까. 2020년 시작하는 주. 대배우의 책 속 이야기, '뭐든지 해내라'는 말과 '누구에게나 친절하라'는 가르침이 떠오른다.


https://youtu.be/wSfdSeJAfbg

http://www.yes24.com/Product/Goods/85121544?scode=032&OzSrank=1

http://www.yes24.com/Product/Goods/61115125?Acode=101

http://modernmother.co.kr

http://modernmother.kr


작가의 이전글 열세 살, 졸업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