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Jan 29. 2020

철거의 미학

한 편의 난타처럼 뜯어 부수고 걷어 내고

  처음 ‘철거’를 하던 날. 그 날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싱크대는 철거해 주시고, 욕실도 모두 철거해 주시고, 마루도 철거해 바닥을 평평하게 다듬어 주시고, 조명도 모두 철거해 주시고, 방문은 그냥 쓸 거니까 그냥 둬 주시고’라고 설명한 내 얘기를 철거팀에서 정확하게 이해하시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른 업종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룰을 배워야 한다. 시각 디자인을 위해서는 종이의 종류와 이름, 색상표, 폰트 이름, 제판 용어를 알아야 업무를 할 수 있고, 인터넷 상거래를 위해서는 최소한 호스팅, 도메인에 대한 기본 개념과 HTML, 이미지 수정하는 법 정도는 알아야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철거를 위해서는 철거 도구, 설비와 미장, 방수에 대한 지식을 새로 배워야 했는데, 경험 없는 이론이란 허공으로 날아가는 연기와 같다. 처음 해 보는 일 앞에서는 비 맞은 참새처럼 부들부들 떨린다. 마치, 혈혈단신으로 외국에 나간 것 같은 낯섦이 느껴진다.

  그래서 철거 날 하루 종일 현장에 서 있었다. 빠루가 지나갈 때마다 드러나는 우리 집의 맨얼굴을 빤히 지켜보았다. 첫 번째로 장이 뜯겨 나갔다. 10년 넘게 그곳에 있었던 붙박이 장이 드릴 몇 번에 분리되어 사라졌다. 걸레받이와 몰딩은 빠루를 끼워 넣어 지렛대처럼 들어 올리면 뜯겨 나갔다.

  욕실의 도기가 들려 나가고, 타일과 마루를 뜯었다. 함마 드릴이 온 집을 부술 듯 달려들었다. 그 소음과 진동은 뼛속까지 울리는 것 같았다. 마루를 철거하고 바닥을 갈아 낼 땐 그라인더가 뿜어내는 시멘트 먼지를  폭삭 뒤집어써, 온몸이 거슬거슬했다. 빠른 속도로 비워지는 우리 집. 변해가는 모습은 화장을 하나씩 지우는 배우 같았다.

  우리 집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집을 고칠 때도 철거를 하는 날엔 유난히 긴장이 된다. 실수가 생기면 수습하는 데에 계획에 넣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용하려고 했던 싱크대 인조대리석 상판에 금이 가면 백몇십만 원, 그냥 쓰려고 했던 타일을 부수면 몇 십만 원, 그런 식이다.

  몸은 관성에 따라 움직인다. 달리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가 움직일 때와 비슷하다. 망치질을 계속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옆을 내리쳐 뭔가에 흠집을 낸다. 작업자들도 사람인지라, 나무에서 떨어지는 실수를 할 때가 종종 있다. 가끔 생기는 일이지만, 계속 변종이 생기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힘이 든다.  
  
  같이 현장에서 만나 일을 해 보기 전엔 호흡이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똬리를 틀고 있다. 몇 번의 탐색 끝에 마음에 맞는 철거팀을 찾았다. 수원에 있는 그 철거 업체의 사장님은 키가 큰 동갑내기셨는데, 큰 키만큼 긴 팔과 다리로 거침없이, 그러면서도 꼼꼼하게 작업하셨다.

  현장을 서너 번 돌았을까. 하루는 사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정사장 휴대폰이죠?”
“네, 맞는데요.”
“거기, 내가 그쪽을, 음, 아니다. 저기 있잖아요.”
“사장님, 약주하셨어요?”
“네, 내가 술을 좀 먹기는 먹었는데...”
“저기, 오늘은 술을 많이 드신 것 같으니 내일 다시 전화 주시는 게 좋겠어요.” 하고 끊었다.

다음 날 동료가 묻는다.
“어제 철거 사장님이 전화 주지 않으셨어요?”
“어, 네, 어떻게 아세요?”
“뭐라 하시던가요?”
“아니, 약주를 좀 많이 하신 것 같아서, 다음에 통화하자 하고 끊었어요.”
“저한테 전화하셔서 대표님이 좋다고, 한참을 횡설수설하시더라고요.”
“네? 저기, 혹시 제가 결혼한 걸 모르시나요?”
“설마요...?”
그렇게, 일 잘하는 철거 업체와는 더 이상 일 하지 않게 되었다.  


  썩 마음에 들지 않은 채로, 몇 번의 현장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내 블로그에 이웃 추가하신 분 중 철거업체의 사장님이 계셨다. 나와 감수성이 비슷한 분이실 것 같아 연락을 드렸다. 처음 만나는 호흡을 맞추는 팀 역시 서로의 언어와 작업 방식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날도 나는 처음처럼 현장에 서 있었다.

  철거팀이 현장을 뜯고 있는데 소음이 크지 않다. 된소리로 들릴 소음이 예사소리로 부지직, 디링 하는 정도로. 박자 맞춰 울리는 소리가 난타의 리듬 같다. 이 분들은 연장을 들고, 어깨에 메고 물처럼 이동하면서도 벽에 하나 부딪히지 않는다. 도구와 몸이 하나 된, 무림의 고수가 이런 모습일까.

  서로 몸을 움직이며 일하면서도 동선이 엉키지 않는 모습. 작업자들의 숙련된 움직임이 마치 발레처럼 아름다웠다. 먼지가 자욱한 철거현장에서 발레와 난타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본 느낌이다. 공사장에서 예술 작품을 만날 때의 힐링이 느껴지다니.

  폐기물을 실은 트럭을 보고는, 서서 물개 박수를 칠 뻔했다. 폐자재를 켜켜이 쌓은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크루아상이 연상되었다. 폐기물을 편평하게 차곡차곡 쌓고, 맨 위에는 무게가 있는 기계로 올려 흔들리지 않게 눌렀다. 마지막으로 폐기물과 기계를 묶어 야물게 고정했다.

  마지막으로 통로와 트럭 주변까지 깨끗하게 빗질을 한다 . 떠나는 모습까지 프로임을 보이고 있다. 먼지를 보고 기분이 좋지 않을 동네 사람들에 대한 배려. 사소한 디테일이란, 누가 보고 있던 보고 있지 않던 한결같은 태도에서, 다음 작업을 생각하는 모습에서 읽힌다.

  감수성이 비슷한 사장님께 내가 느낀 그대로 ‘최고의 팀’이라고 말씀드리니, 너무 좋아하시면서 일을 많이 하라고 덕담을 하고 가신다. 현장에서 뵙는 고수들이 정직하게 몸이 움직일 때마다 만들어지는 결과물. 현장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강연 칼럼 문의 >  modernmother@daum.net 으로 부탁드립니다.


http://bit.ly/작가정재경의초록빛창작생활

http://modernmother.kr

http://instagram.com/jaekyung.jeong

작가의 이전글 작은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