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아침 러닝 후.
오늘 아침에도 5시 50분에 눈을 떴다. 매일 6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면 충분하다 여기는데, 그때그때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긴 한다. 오늘 아침엔 몸이 무겁다. 그래, 어제 있었던 일이 내 마음과 몸에 무리를 준 걸 거야.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지.
어젠, 35년 만에 동생이 잠들어 있는 천주교 용인공원묘원에 다녀왔다. 관리소를 마주 보고 언덕길을 따라 올라, 굽이진 길을 두 번 돌아 올랐다. 산 중턱쯤 되는 곳. 풀이 자란 묘 사이를 걸어, 두 단 내려가, 오른쪽으로 두 번째 자리에 묘석이 보인다.
정 마리아, 재은, 1976년 11월 18일~1985년 4월 14일이라고 쓰인 묘비를 보자마자 내 눈엔, 눈물이 고인다. 묘로 시선을 옮기는 눈에서, 또르륵 눈물 방울이 떨어진다. 오늘이면 사라질 이 자리. 얼른 사진으로 남긴다. 이미 눈은, 초점이 흐려졌다.
자, 여기 서서. 니 덕에 언니들이랑 동생이랑 다 잘 산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한 마디씩 하고...... 아빠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내 옆에 서 있던 엄마의 울음이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온다. 엄마의 울음소리는, 가슴속 저 깊은 곳, 꼭꼭 숨은 크고 깊은 동굴에서 울리는 소리다. 두 손으로 누르고, 돌로 누르고, 뚜껑을 덮어 누르고, 발로 밟아 눌러도 떠오르는 슬픔을 동굴 속으로 욱여넣어, 종유석으로 덮은.
내가 너를 묻고 한평생,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고 좋아도 좋은 것 같지 않고...... 엄마는 엉엉 울면서도, 등에 멘 가방을 가슴팍으로 돌려, 찬송가 책 두 권을 꺼낸다. 마른 단풍잎이 두툼하게 끼워져 있는 한 권과 그보다 작은 책 한 권. 엄마는 책을 펴, 울먹이면서 찬송가를 부른다. 같이 부르고 싶은데, 모르는 노래다. 나도 알면 같이 부를 걸. 평소 실력은 이럴 때, 어김없이 드러난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화장대엔 마른 은행잎, 단풍잎이 잔뜩 끼워져 있는 성경책도 있었다. 여기 올 때마다 모아둔 거구나. 내 눈물 줄기도 굵어진다. 우리의 눈물은 폭포가 되어 흐른다.
우리의 의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곡괭이와 삽이 날아든다. 끝까지 보고 싶었지만, 아빠가 여자는 보는 게 아니라 극구 말리신다. 엄마도 끝까지 보길 원하지 않으시는 듯하다. 굳이 아빠 뜻에 거스르고 싶지 않다. 하고 싶으신 대로. 가장 큰 효도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드리는 거라 믿는다.
내 마음속 하나님은 쟤야. 엄마가 35년 간 품고 있던 비밀을 토해낸다. 아, 그래서 엄마가 하나님하고 그렇게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눴구나. 쟤는 너무 똑똑해서 우리 집안을 크게 세웠을 아인데..... 엄마, 그래서 나는 차라리 나를 데려가지. 왜 쟤를 데려갔나. 나는 계속 그런 생각을 했어.
언니 죽던 날, 큰 언니가 엄마 아빠한테 버선발로 달려가 엉엉 울더라? 나도 너무 슬펐는데, 막내가 와서 놀자고 그러더라? 그래서 아저씨가 사 온 아이스크림을 먹었어. 사람들이 쟤들은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는데, 나도 너무 슬펐는데, 속상했어.
우린 그렇게 35년 간 묵은 이야기를 꺼낸다. 슬픈 일은 젓갈이다. 생선에 소금을 한 켜 얹고, 생선을 올리고 또 한 켜 소금을 뿌리며 묵혀야 쓸모가 생긴다. 살아 있는 슬픔에 소금을 뿌리면 몸서리쳐지게 아프겠지. 그래도 꺼내 소금을 치고, 또 소금을 쳐야 한다. 아프더라도 꺼내, 울며 이야기하며 삭이는 게 낫다. 방치하면 부패해, 손 쓸 수 없는 생선이 되기도 한다.
그 아이가 머물던 천주교 용인공원묘원은 공원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잘 관리되고 있다. 산 중턱, 동생이 있던 자리에서는 사이프러스 나무, 단풍나무가 간간히 시선에 들어온다. 맞은편 납골당의 꽃들도, 가지런한 묘석도 부지런한 손길이 느껴져 아름답다. 이런 풍광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35년 전의 일이지만 너무나 생생해 꺼낼 때마다 아프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살리지 못 한 무기력일까, 애착의 대상이 사라진 상실감일까, 피지도 못 한 꽃이 아쉬운 걸까.
어제도 결국, 재은아, 많이 보고 싶었어. 사랑해. 나중에 언젠가 다시 만나면 꼭 재미있게 놀자.라고 말해주지 못했다. 한 번도 말해 본 적 없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사랑도 습관이다. 마음을 표현하는 건 몸이기 때문에, 따뜻한 눈빛을 보내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근육에 스며야 자연스럽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점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한 것. 사랑한다고 말해 주지 못 한 것. 우린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눈물관을 건드린 때문일까, 비염이 발작처럼 일어나 콧물이 눈물처럼 떨어졌다. 알레르기 약을 먹고 진정되지 않아, 다시 코감기 약을 먹으니 겨우 가라앉았다. 덕분인지 오늘은 몸이 무거워 영 달리기 속도가 나지 않는다. 특히 가슴팍 한가운데 기관지 쪽이 퍽퍽하게 당겨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어쩐지 만족감이 덜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해.
오늘 아침 산책로엔 몸의 움직임이 유연하지 않은 어르신들이 많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켜 운동 중인 어르신들. 살아가는 내내, 몸과 마음과 생각을 사용하는 방법은 계속 훈련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의 저자는 뇌졸중 후 8년 만에 정상 컨디션을 찾았다는데, 매일 2시간씩 3킬로짜리 아령을 들고 걸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매일매일 2시간씩 걸을 수 있을까. 어찌 되었던 매일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