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운동 후엔 땀이 뻘뻘 흐른다. 평소 심박수가 50~60 대에 오가는 심장이 평소의 세 배에 가깝게 140~150으로 움직이면, 온몸에 혈액이 힘차게 흐르는 모양이다. 뇌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도 다섯 배쯤 많아지고, 그 얘기를 하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하다. 무거운 팔다리를 움직여야만 만들어지는 이야기들.
집에서 나와 1.5킬로미터를 달리면, 왼쪽 끝에서 두 번째에 왕벚나무가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 벚꽃 카펫 길을 놓치고, 다 진 다음 이제야 달리기가 하고 싶은 내가 아둔하게 느껴졌다. 바로 그때, 왕벚나무가 겹벚꽃을 보여주었다. 겹벚꽃은 캉캉치마 같이 풍성하고 화려하다. 모두가 벚꽃을 피울 때, 한 템포 느리게 겹벚꽃을 피우는, 그 비주류 아웃사이더스러움에 마음을 빼앗겼다.
거기까지 달려가, 왕벚나무에게 인사한다. 고양이 별이 앞발을 어루만지듯, 왕벚나무 잎을 어루만지고, 다시 집으로 달려온다.
오늘 아침엔 이어폰을 빼고 달렸다. 포장된 길을 움직이는 내 운동화 아래서도 저벅저벅 소리가 들린다. 물소리도 가늘게 들리고, 새소리가 화려하다. 이쪽 편 까치가 깍깍하면, 천 건너 까지가 깍깍 대답한다. 질문과 대답의 간격이 규칙적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궁금하네. 귀여운가...? 하지만, 옥상 블루베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까치들에겐 호감을 가질 수 없다.
산책로엔 동지들이 많다. 아침에 일어날까 말까부터 시작해, 옷을 입으면서도 갈까 말까, 오늘 혹시 먼지가 많지는 않나, 괜히 오른쪽 무릎의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짧은 순간에도 ‘귀찮은데, 오늘은 가지 말까?’라고 꼬드기는 물귀신이 나타난다. 그 물귀신들을 떨쳐버리고 산책길로 나선 사람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중년 부부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다. 참 사이가 좋으시네. 지금 입기엔 두꺼워 보이는 두툼한 검은 잠바를 입고, 귀에는 큰 헤드폰을 끼고 걷는 아저씨도 있다. 힘차게 달리는 아저씨 무릎의 까만 보호대에 눈길이 머문다. 나도 해야 하나...?
오늘 아침엔, 노란 유모차에 아이를 눕혀, 아이와 산책로를 함께 걷거나 달리는 젊은 아빠가 안 보인다. 아이에겐 이 수풀이 어떻게 기억될까? 유모차 속 아이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찬 깊은 호수 같았다. 맞은편에선 다리가 살짝 벌어진 할아버지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신다. 저 할아버지는 아까도 뵈었는데. 속도가 일정하다. 노력이 존경스럽다.
도로에 가까워질수록 배기가스 냄새가 진해진다. 풀향기가 소중해지는 지점. 수풀 옆에 바짝 붙어 달리며,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신다. 초반에 너무 내달렸나. 오늘은 1.5킬로까지 쉬지 않고 달렸지만,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다. 돌아오는 길은 걷다시피 했다. 꾸준하게 한결같은 페이스로 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래도, 오늘도 움직인 두 팔과 다리에게 고맙다.
내 키만큼 자란 풀들이 모두 사라졌다. 비가 올 때마다 한 자씩 자라는 잡초의 생명력은 경이롭다. 산책로 쪽 풀들을 모두 베어, 둔덕을 덮었다. 풀로 흙 표면을 멀칭을 하면 잡초 씨앗이 싹트는 것을 막아 풀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환경은 아끼고 보전해야 하지만, 한여름의 풀들은 드세니까 괜찮을 거야. 이 방법은 인간과 풀의 절충 지대쯤 되지 않을까. 누군가의 수고에 감사하다.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예술가란 눈과 손과 마음을 모두 써야 한다고 했다. 그중 둘만 쓰면 아티스트라 할 수 없다고. 이어폰을 빼니 더 많은 소리가 귀로 들리고, 소리를 만드는 대상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 아침엔 새소리가 유난히 바쁘다. 내 눈과 귀도 마음도 그 소리에 박자를 맞춘다. 마지막으로 손을 써 글을 남긴다. 짹짹 또로롱 깍깍 뻐꾹뻐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