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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n 07. 2020

같이 뜁시다

새하얀 운동화를 신고

  하늘이 새파랗고, 구름이 또렷했던 4월 30일 아침, ‘갑자기 달려보자!’ 하는 마음이 들어 무작정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2킬로미터 달리는 데 30분. 그것은 과연 달린 것인가. 마지막으로 달리기를 한 것이 언젠지, 기억을 아무리 뒤져 봐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대학 입시를 위한 체력장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아. 아니지, 아들 유치원 운동회에서 한 번 달린 적이 있던가. 기억이, 닦지 않은 유리창처럼 흐릿하다.

  첫 러닝은 나이키 런 클럽 앱을 켜고 박나래 코치와 아이린 코치와 함께 달렸던 회복 러닝이었다. 아이린 코치는 회복 러닝에서는 다음에 또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중요하다 했고, 달리기를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며 부추겼다. 그 말은, 식물을 하나도 안 키우는 사람은 있어도 하나만 키우는 사람은 없다는, 나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좋은 건, 한 번 해 보면 계속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일까, 다음 날 운동화를 신고 또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두 번 달리고, 쿠셔닝이 좋은 새 러닝화를 구입했다.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구입한 김에 또 달리는, 선순환이 시작되었다.

  새 운동화를 신고 처음 달리던 날, 집 밖에 나오니 새하얀 운동화가 손오공의 근두운처럼 동동 떠다닌다. ‘너무 하얀 운동화를 샀나. 너무 도드라지는데. 아니, 이 봄 꽃 속에서도 새햐안 운동화만 보이네.’ 운동복 상의도 생각보다 얇아 신경이 쓰였다. 달리는 데 편안한 복장이 따로 있나 골똘히 생각하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는 집이 늘어서 있고, 왼쪽에는 수풀이 무성한 산책로 저 끝, 어르신 두 분이 서 계신 게 보인다. 러닝 쇼츠와 짧은 소매의 상의 밖으로 나온 팔다리의 근육이 단단하고, 몸통엔 군살이 하나도 없다. 몸은 20대인데, 눌러쓴 모자 밖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이 하얗다. 아니! 이런 수행자의 몸이라니. 나는, 왠지 새하얀 나의 새 운동화가 부끄러워 있는 힘껏 내달려 두 어르신을 지나친다.

  한참을 달리다 헉헉 대는 숨을 고른다. 이미 내 두 다리는 힘이 풀렸다. 걷고 있는 나를 지나가시는 두 어르신.

“같이 뜁시다.”
“(얼떨결에)네!”
“달린 지 오래되셨나요?”
“오늘이 세 번째입니다!”

짧은 질문이라도 두 분의 호흡은 안정적이다. 나는 한 박자 쉬고 숨을 끌어 모아 대답한다.  

“달리기가 참 좋은 운동입니다. 혼자 뛰면 재미없으니 동회회 가입하세요. 분당마라톤클럽이라고 있습니다.”
“아, 네”
“달리기에 대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달리기는 모든 것을 얻게 해 주시만, 잘못된 달리기는 모든 것을 잃게 합니다.”
“네.” 나는 더 이상 뛰기 힘들다.
“저는 여기까지 달리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우린 조금 더 뛰겠습니다.”

  이 짧은 대화에서, 두 어르신의 대화는 핵심을 지난다. 나에 대한 탐색 혹은 사실 확인, 동호회 가입 권유, 당신들의 실력으로 초보자에게 동기 부여.

  두 분은 틀림없이 내리막길에서도 힘껏 내지르던 내 뒷모습을 보셨을 거다. 내리막에서는 있는 힘껏 달리면 안 된다. 무릎에 하중이 걸려 무리를 주니 삼가야 한다. 그렇게 달리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뛰면 안 됩니다.’ 한 문장으로 끝 날 이야기를 ‘달리기에 대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달리기는 모든 것을 얻게 해 주지만, 잘못된 달리기는 모든 것을 잃게 합니다.’ 세 배쯤 긴 문장으로 말씀하신다.

  숨 가쁘지 않게, 안정적인 호흡으로 길게 이야기하는 에너지도 근육에서 나오는 걸까. 친절하게 이야기하는, 노련한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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