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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n 03. 2020

하늘과 바람과 비와 해

  달리기를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다.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모닝페이지를 쓴다. 끝내자마자,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며 달리기를 준비한다. 애플워치, 에어팟을 챙기고, 모자를 눌러쓰며, 휴대폰을 가져갈지 말지 늘 고민한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려면 가져가는 편이 좋지만, 아무것도 없이 달릴 때 맨몸으로 물속을 헤엄치듯 자유롭다.


  매일 같은 길을 달리지만, 길가의 나무와 풀은 매일 다르다. 그 모습이 궁금해 기어이 운동화를 신게 된다. 며칠 전부터는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키가 큰 꽃이 눈에 들어온다. 손바닥 반만 한 크기에, 코스모스 잎처럼 끝에 살짝 톱니가 있는 노란 꽃은, 내 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나도 환한 미소로 대답한다.


  너는 이름이 뭘까. 가까이 가, 잎 모양을 관찰하다, 이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마당에서 몽땅 뽑아낸 풀과 비슷하다. 잡초인 줄 알았는데, 그 새싹이 바로 이 꽃의 싹이었나 보다. 미안해진다. 너는 내게 환한 얼굴로 웃어주려 했는데, 나는 미처 알아 봐 주지 못했구나.


  마침 도시농업전문가 수업이 이루어지는 성남 시민농장에도 노란 꽃이 활짝 피어 한 아름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선생님께 여쭈니, 그 꽃의 이름은 ‘금계국’이었다. 금. 계. 국. 이름을 불러 주니, 내게 와 꽃이 되었다. 눈이 알싸할 만큼 오월의 햇살을 가득 머금은 노란색, 금계국.

  코로나 19가 일상을 침범한 이후로 나는, 몸과 마음과 생각 사용법을 처음부터 다시 익히고 있는 것 같다. 집안에만 있기 답답해 사람이 적은 시간대를 골라 뛰기 시작했다. 달리는 동안 눈으로 들어오는 이미지가 예술작품을 본 듯 마음을 채운다. 잎의 크기, 모양, 초록의 농담이 매일매일 다르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과 초록 나무와 시냇물이 만들어 내는 풍경화라니.


  비 온 다음 날엔 운동복으로 챙겨 입는 내 손발이 분주하다. 어서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어서. 수목이 뿜은 피톤치드가 빗방울에 녹아, 나무 주변의 공기가 더없이 상쾌하다. 코로 느끼는 풀잎과 꽃 향기, 얼굴 피부로 느끼는 바람의 온도, 두 다리로 디디는 땅의 질감. 달리며 미토콘드리아 끝까지 에너지가 채워진다.


  실내에서 자란 식물 줄기는 점점 가늘어진다. 실내에만 머물던 나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밖에 내놓고 키운 식물은 줄기가 단단하게 목질화 된다. 바람은 식물을 흔들어 강제로 운동을 하게 한다. 흔들리며 뽑히지 않으려고 뿌리를 더 단단하게 내리고, 줄기를 키우려 물관과 수관을 키운다. 나 역시 하늘과 바람과 비와 해를 맞으며 더욱 단단해지지 않을까.


  유튜브 ‘조승연의 탐구생활’ 사회적 거리두기 편에서는 하루 15분~30분 햇빛보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인간의 행복에 일조량과 운동량이 중요하다고. 달리고 오면 확실히 기분이 좋아진다. 튼튼한 두 다리에도 감사하다. <소망을 이루어주는 감사의 힘>에 따르면 ‘감사한 생각과 감정으로 옮겨 가게 되면, 심장과 뇌의 파동이 일치하고 몸의 전자기장이 조화를 이루어 그에 부합하는 파동을 가진 일들을 끌어들이게 될 것’이라 전한다. 두근두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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