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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n 10. 2020

매일매일, 20분의 힘

  5시 50분. 알람이 한 번 울리자마자 버튼을 눌러, 소리를 끈다. 어젯밤에 채워 놓은 노란색 켄우드 전기주전자 버튼을 누르고, 화장실에 다녀온다. 그리고, 잠이 덜 깨 비틀비틀한 손으로 자뎅 에스프레소 냉동건조 커피 두 봉을 가위로 잘라 컵에 붓는다. 그동안 물이 끓으며 탁 꺼지는 스위치. 그 물을 454ml 스타벅스 캘리포니아 시티컵에 붓는다.  
  
  바로 노란 로이텀 노트를 꺼내, 만년필 뚜껑을 열어 모닝페이지를 쓴다. 카웨코 스튜던트 만년필을 쓰지만, 어느새 고장 난 페르케오를 다시 꺼내 쓰고 있다. 흰색 바디에 웜 그레이 뚜껑이 주는 시각적 편안함. 잉크는 파란색 라미 만년필 잉크에 검은색 워터맨 잉크를 섞어 조제했다. 나의 규칙은 한 페이지, 20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무슨 이야기를 쓰는지 모르는 채 그저 생각과 손을 푼다.

  처음엔 굴러다니던 노트에 기록했다. 새 노트를 샀다가 작심삼일이 되어 실망할까 봐. 그래서 뭔가 하고 싶을 땐, 집에 있는 것들을 모아 그저 부담 없이 시작한다. 쓰다 남은 대학노트를 모아, 스프링을 돌려 끼워 한 권을 만들었다. 그냥 새로 사는 게 빠르고 편하지 않나. 하지만, 수명이 남아 있는 사물들이 끝까지 완전히 연소되도록 사용할 때 개운하다.

  2017년 6월 11일. 노트는 그렇게 시작했다. <아티스트웨이>에서 줄리아 캐머론 작가가 ‘매일 쓰는 사람은 작가’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일 년을 쓰면 책 한 권이 나오고, 삼 년을 쓰면 시나리오 작가나 영화감독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을 수 없었다. 정말 그렇단 말이야?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하루 20분 투자에 얻을 수 있는 결과라면 훌륭하지 않나. 그 말이 진짜인지 궁금해 그저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아침마다 쓴 모닝페이지로 두툼한 대학 노트 다섯 권이 생겼고, 만 3년이 지나자, 나는 정말로 책을 세 권 쓴 작가가 되었다.

  매일매일 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가 매일매일 하고 있는 일들은 많다. 매일매일 밥을 먹고, 매일매일 양치를 하고, 매일매일 출근을 한다. 그저 거기에 숟가락 한 개 더 올리듯, 그냥 하면 된다. ‘해야만 한다! 해야만 해!’ 하면, 하기 싫어진다. 호기심을 유지하는 게 도움이 된다. 너무너무 궁금해 죽겠어. 결과가 궁금하니까 하게 된다.

  두툼한 대학노트에 쓰던 모닝페이지를, 올해부터 10배 가까이 비싼 샛노란 로이텀 노트에 쓰기 시작했다. 대학노트 크기의 반에 반 정도 될까. 내가 남길 기록이 부피가 커지면 누군가에게는 짐이 될 것 같아 불편했고, 아침마다 만나는 노트를 꼭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 나를 대접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니까, 다 쓰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해져 자꾸자꾸 또 쓰게 된다. 내 책꽂이엔 왕겹벚꽃 색, 딸기우유 색, 찌기 전 쑥떡 색 새 로이텀 노트가 기다리고 있다. 예쁜 노트가 너무너무 쓰고 싶어 또 쓰게 된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고 답답해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체세포는 약 37조 개. 걔네들이 어떻게 물리적 화학적 반응을 일으킬지, 도저히 나는 알 수가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내 몸과 마음을 움직이며, 궁금증을 해결해 나갈 뿐. 덕분에, 나는 3년 동안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지 않았나!

  이런 나를 보고, 매일매일 쓰기 시작한 지인분들이 양 손으로 세야 할 만큼 늘었다. 사람은 성장할 때 행복하다. 기다가 걷기 시작할 때의 아이를 보라. 일어 선 것만으로도 박수를 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즐기며 노력하는 나, 어제의 나보다 조금 잘하는 나는, 나만이 알 수 있다. 어제 평균 속도 8분 넘게 걸리던 길을 오늘 7.34분에 뛰고 온 내 두 다리. 이럴 때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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