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Jun 26. 2020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달리기를 시작할 때, 오늘은 과연 어떤 내가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기도 한다. 어제저녁을 가볍게 먹었더니, 확실히 몸이 가뿐하다. 덕분에 오늘은, 첫 발걸음 내디딜 때, 오른쪽 발목, 무릎, 허벅지, 고관절, 골반, 등의 움직임이 부드럽다.


  비 내린, 안개가 자욱한 운중천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 신선한 공기와 피부에 닿는 청량한 느낌. 천을 따라 흐르는 물의 유속이 빨라져, 졸졸 콸콸 대는 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온다.


  달리며 내 몸을 느낀다. 발의 움직임은, 발꿈치가 먼저 착지하고, 발바닥, 힘이 들어가는 발가락 관절 순서로 작동한다. 발이 움직이려면 골반부터 고관절, 허벅다리까지 연결된 긴 근육이 꿈틀거리고, 팔을 앞뒤로 흔들면서 어깨부터 등근육까지 움직인다.  

  

  그뿐이 아니다. 숨을 쉴 때마다 기관지가 자기도 여기 있다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폐와 심장도 부풀었다 쪼그라드는 움직임이 느껴지며 내 몸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달리다 보면 저절로, 이 많은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달리기에서 어려운 것은 의외로 호흡이다. 팔다리 무릎은 더 달리고 싶어 하지만, 기관지가 포기해 달리기를 중단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고 보니, 작년 건강검진에서 폐기능 체크할 때 바람을 두 어 번 더 불었던 기억이 난다. 다른 기관에 비해, 폐가 더 빨리 약해지는 것인가.


  당연히 머리가 명령하는 대로, 몸이 움직일 거라 믿어왔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무엇을 먹었는지, 다른 운동을 했는지,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숙면을 했는지에 따라, 그날그날 몸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몸을 움직이며, 나의 유일무이한 악기, 내 몸을 섬세하게 조율한다.


  바쁜 일상을 보내며, 많은 일들을 처리하는 데에 비법이 있을까. 그저, 이렇게 한 가지 한 가지 더하며 저글링 하듯 하나 더 끼워 넣고, 하나 더 끼워 넣고 하는 거겠지. 시간과 체력을 관리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밤새 내린 비에 왕벚나무 잎이 깨끗해졌다. 산책로의 조팝나무들이 밤새 내린 비로 키가 더 자랐다. 빗방울을 실컷 머금은 잎은 무거워, 옆으로 드러누웠다. 그 가지가 꼭, 결승선에서 기다리고 있는 손 같아,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어 하이파이브한다. 에너지가 차오른다.


http://linktr.ee/jaekyung.jeong

매거진의 이전글 모르니까 무섭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