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내렸다. 아침에도 비가 내렸다. 그 얘긴, 달리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아침이 조금 여유롭겠구나. 요가로 몸과 마음을 정비한 후, 책을 읽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오늘 아침엔, 뭔가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책을 읽고 싶었다.
내 방에는 폭 90센티미터, 높이 123센티미터짜리 3단 책장이 두 개 있다. 그 책장엔, 늘 가까이하며 읽고 싶은 책들을 순서대로 꽂아 두었다. 맨 위칸에는 박완서, 김점선, 노라노, 김형석, 데이비드 호크니의 책이 꽂혀 있고, 두 번째 칸에는 하라 켄야, 히사이시 조 등의 책과 함께, 디자인하우스의 책, 안그라픽스의 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다.
그 중. <지적 자본론>이 눈에 들어온다. 며칠 전 대화에서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 <지적 자본론>에 대해 이야기했던 게 생각났다. 바로 오늘 읽고 싶었던, 꼭꼭 씹는 맛이 있는 책. 마지막으로 읽은 날짜는 2019년 3월이라고 써 있다. 어떤 책들은, 읽을 때마다 다른 문장이 보인다.
츠타야의 최고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와 타케오 시의 시장 히와타시의 대화가 눈에 들어온다. ‘인터넷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사회에서 물리적인 장소에 사람을 모으려면 인터넷상에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식적으로 도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람이나 빛,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판안함’이지요’라고 말하고 있다.
누군가를 초대하기도, 초대받기도 부담스러운 코로나 19 시대. 그래서,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큰 럭셔리가 되었다. 코로나 19에 감염되면 큰 희생을 치러야 하므로, 그만큼 ‘가치 있는 경험’에만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다. ‘가치’란 무엇일까. 내겐 사랑, 추억, 감사, 자유 같은 추상적 개념으로 다가온다.
<배움의 발견>이라는 책을 읽다 이사야 벌린의 ‘자유’의 두 가지 개념을 알게 되었다. 소극적 자유는 외부적 장애와 제한으로부터의 자유이고, 개인은 물리적으로 방해받지 않는 한 자유롭다고 한다. 코로나 19는 소극적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비록 소극적 자유를 침해받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적극적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 이사야 벌린의 ‘적극적 자유’는 자기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컨트롤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비이성적인 두려움이나 믿음, 중독, 미신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자기 강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득도’라고 표현하는 경지 아닌가.
빗소리가 줄었다. 나갈까, 말까. 나는 비에 녹은, 나무 내음을 맡고 싶었다. 비 맞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적 자유를 선택하기로 한다. 다시 운동복을 챙겨 입고, 달리기에 나선다. 밥 딜런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비를 맞으며 달리는 것을 선택함으로, 성공한 사람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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