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미술관 <바우하우스와 현대 생활> 전시에서, 샬로트 페리앙의 구조적 주방, 유니떼 다비따시옹을 보았다. 그릇에 딱 맞는 선반과 동선, 거실 쪽으로 창문을 낸 촘촘한 실용성을 가진 주방이다.
샬로트 페리앙은 20대에 이걸 디자인했고, 그땐, 1920년대였다. 그러니까, 20대에 100년 넘도록 사랑받을 디자인을 한 거다. 유니떼 다비따시옹을 한 번 보고, 내 디자인을 한 번 보고. 나는 왜 저렇게 잘하지 못 할까 자괴감에 빠진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열망도 있다. 40세에 <나목>이라는 소설로 등단한 박완서 선생의 <호미>나 <세상에 예쁜 것>을 읽다 보면 또, 왜 나는 이렇게 탄탄한 글을 쓰지 못할까, 왜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하지 못할까 슬퍼지기도 한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을 때도 있다. 온라인 쇼핑이 태동하던 2000년대 초반, 비슷한 시기에 사업을 시작해, 중국 시장을 석권하고, 서울 요지에 사옥을 구입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또 나는 왜 그렇게 돈을 벌지 못 할까 자괴감에 빠진다.
이걸 보면 이게 좋아 보이고, 저걸 보면 또 저게 좋아 보이고,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우선,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의 인생을 탐구했다. 박완서, 김형석, 노라노, 트와일라 타프, 앤서니 트롤롭, 챨스 슐츠, 무라카미 하루키, 헤밍웨이, 데이비드 호크니, 마야 안젤루 같은 예술가의 삶이 마음에 가득 찼다. 특히, <리추얼>에서 마야 안젤루에 대해 ‘르네상스적 인물’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곤, ‘그렇게 멋진 말이 있다니!’하고 무릎을 쳤다.
마야 안젤루는 오프라 윈프리의 멘토가 되었던 인물로, 7살 때 엄마의 남자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삼촌들이 그 남성을 폭행해 사망하게 되고, 실어증으로 5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경험을 담은 ‘나는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아네’로, 흑인 여성 최초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시인, 소설가. 가수, 작곡가, 극작가, 배우, 프로듀서, 인권 운동가, 저널리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걸, ‘르네상스적 인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처음 해 보는 일 앞에서는 늘, 망설여진다. 할까, 말까. 이걸 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한 거겠어? 누가 본다고? 이런 생각이 들 땐, 나이키의 JUST DO IT이 떠오른다. 그냥 해. 그냥 하면 된다.
아침 달리기 후, 쓴 싱싱한 글이, 브런치, 블로그, 인플루언서 검색, 페이스북, 밴드를 통해 매일 아침 만 명 남짓의 사람들에게 퍼져 나간다. 아침 햇살 가득 담은 좋은 에너지. 매일 찾아 읽어주시는 분들의 좋아요와 댓글을 포션 삼아 마시며 한 달 동안 30편의 글을 남겼다.
시작할 땐 모른다. 노력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고, 결과물이 남아야 알 수 있는 것. 등을 따라 줄기가 되어 흐르는 땀이 느껴진다. 조금씩 더 잘하면서, 르네상스적인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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