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를 마신 나무들은 고 며칠 사이에도 백일 아기처럼 쑥쑥 자랐다. 잎은 숱이 많아져, 밑동에 드리운 그늘의 밀도가 높아졌고, 솔잎, 버드나무잎, 풀 색상이 하루만큼씩 진해지고 있다. 오늘 하늘은 닦은 유리창처럼 선명하고 또렷하다. 일 년 중 7월의 초록이 가장 풍성할까.
달릴 때는 유키 쿠라모토의 ‘로망스'를 듣는다. 이어폰을 타고 들리는 피아노 연주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 길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함께 감성을 적신다.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은 'Sighing wind’. 피아노 음률이 산들바람처럼 잎을 톡톡 건드린다.
운중천의 식물들은 4개 층을 이루고 있다. 바닥을 기며 땅을 덮는 지피식물, 꼿꼿하게 1.5미터 내외로 자라는 풀, 버드나무나 물푸레 같은 나무들, 메타세쿼이아 나무처럼 아파트 5~6층 높이로 자라는 나무들. 식물학자들은 식물이 만드는 ‘층’이 다양할수록 건강한 숲으로 본다.
우리는 땅 밖에서 자라는 초록 잎과 줄기에 시선을 맞추지만, 흙 속에서도 식물은 층층이 자라고 있다. 식물에 따라 땅속으로 뻗어 들어가는 깊이가 다르다. 재미있는 사실은, 식물 종에 따라, 뿌리에 공생하는 미생물의 종류도 다르다는 점. 다양한 식물이 자랄수록 다양한 미생물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너무 작아서, 존재감이 없는 이 작은 생물체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흙을 보면 알 수 있다. 미생물은 호흡하며 땅속에 공기층을 만들고, 무기물을 유기물로 바꾼다. 덕분에, 좋은 흙일수록, 보드랍고 푹신하며, 색이 진하고, 영양소가 풍부하다. 식물은 미생물이 만든 양분을 먹고 녹음이 짙어진다.
우리 몸 역시 그렇다. 사람 몸에는 약 1조 개의 미생물이 함께 살고, 그 미생물이 이루는 생태계를 ‘마이크로바이옴’이라 부른다. 다양한 미생물이 살고 있을수록 외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힘이 강해진다. 그걸 우리는 ‘면역력’이라 부른다.
30년 동안 마이크로바이옴을 연구해 온, 천랩 대표이사이자 서울대학교 교수인 천종식 박사는 유튜브 채널 ‘마이크로바이옴' 클래스에서 5년 동안 알츠하이머가 진행되던 83세의 남성에게 마이크로바이옴 이식 후, 기억력과 인지 능력이 향상된 사례를 소개한다.
<최강의 인생>이라는 책에서는 흙이 품고 있는 미생물에 대해 언급하며, 최강의 인생을 위해서는 식물과 흙과 친하게 지내라 말한다. 건강하려면 지금 흙을 만지고, 미생물의 먹이가 되는 음식들을 먹어야 한다는 의미다. 코로나 19 덕분에 작고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반추한다. 모든 일엔, 배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