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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l 15. 2020

돌보기

  스파티필룸을 열 포트쯤 구입했다. 그중 여덟 포기는 뿌리를 씻어 수경재배해 주고, 남은 두 포기를 깜빡 잊었다. 아차 싶어 들여다보니, 한 아이는 여전히 줄기를 짱짱하게 세우고 있고, 다른 하나는 물기 하나 없이 종이처럼 말라 줄기까지 드러누웠다. 완전히 기절했다.

  죽었나 싶을 정도로 기운이 없는 스파티필룸도, 뿌리를 통째로 물에 담가 하룻밤 이틀 밤 불려주면, 마른 나물에 물이 오르듯 수분을 머금어 되살아 나기도 한다. 만약,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면, 몇 날 며칠을 물에 담가 두어도 생명이 돌아오진 않는다.

  같은 날, 같은 가게에서 사 온 식물이니, 아마 농장에서도 같은 날, 같은 씨를 뿌렸을 것이다. 그래도 한 놈은 싱싱하고, 한 놈은 기절했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다르다. 똑같은 모습을 기대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녀석은 다시 줄기를 꼿꼿하게 세운다. 툭툭 치며, 미안했어. 사과한다.

  일상을 정신없이 살다 보면, 식물뿐 아니라, ‘나’를 돌볼 시간도 없다. 나의 마음, 몸, 생각. 껍데기만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어떤 것을 점점 잊어버리게 된다. 우리의 똑똑한 뇌는, 사용하지 않는 기능으로 가는 에너지를 가차 없이 끊어 버린다. 그러다 보면, ‘나’는 점점 말라붙는다. 기절하는 식물처럼.  

  나를 위해서는 작은 노력들이 필요하다. 5분이라도 지금 당장 운동을 시작하는 것, 20분이라도 날 위한 시간을 마련하는 것 같은. 심장이 팡팡 뛰는 운동은 온몸의 혈액과 림프를 순환시켜 기분이 좋아진다. 내 기분을 종이에 적는 20분은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게 돕는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찾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내게 용기를 주는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이 시작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 하고, 기운이 없어서 못 하고, 돈이 없어서 못 하고......

  무엇 때문에 안 되고, 무엇 때문에 안 되고 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 질문해 본다. ‘비가 오면 달리기를 할 수 없고’라는 생각이 들면, ‘왜? 비가 오면 달리기를 할 수 없어?’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럼, ‘비가 오면 달리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되지!’라고 대답한다.

  ‘아우, 내가 달리기를 어떻게 해!’라는 생각이 들면, ‘왜? 왜 나는 달리기를 못 해?’라고 순진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달리기를 안 한지 너무 오래됐고, 나는 체력이 약하고, 어쩌고 저쩌고.’라고 말이 많아진다. ‘그럼, 일단 한 번 달려보고 생각하자!’라고 대답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새벽, 조팝나무와 벚나무 사이를 달리며 생각한다. 그래도 일단 한 번 달려 보길 잘했다고, 나를 위한 시간으로 감성과 신체 에너지를 채워 늘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도록 조율하는 것. 얄밉게도 그때, 생산성과 효율이 가장 높다. 그래야 또 나를 위한 에너지와 시간을 만들 수 있으니,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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