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의 주방에 무겁고 큰 새빨간 기계가 나타났습니다. 마징가제트의 무릎 아래만 뎅강 잘라온 것 같은 기계는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밀대 두 개가 서로 맞물리며 반죽을 평평하게 펴주는 기계였습니다. 맞은편엔 칼국수를 만드는 밀대 두 개가 있었어요.
엄마는 스텐 보울에 밀가루를 붓고, 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반죽을 치댔습니다. 뜨거운 물로 반죽을 하며 연신 앗, 뜨거워. 하는 엄마. 그럼 찬물로 반죽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엄마는 익반죽을 해야 더 맛있다며 계속 뜨거운 물을 부으며 치대셨습니다. 질척거리면 밀가루를 더 넣고, 너무 퍽퍽하면 물을 더 넣으면서 한참을 치대면, 드디어 흝날리던 밀가루들이 덩어리로 뭉칩니다.
그 덩어리를 밀대 사이에 놓고, 손잡이를 돌립니다. 그럼 신기하게 매끈하고 평평한 반죽이 되어 나옵니다. 긴 평평한 반죽에 밀가루를 발라 접어, 칼국수 모양 요철이 있는 밀대 사이로 넣는 것이 주로 제 역할이었어요. 엄마는 면이 달라붙지 않도록 손으로 탁탁 쳐 가며, 한 손으로 손잡이를 돌리셨어요.
어떨 땐 평평해진 반죽을 주전자 뚜껑으로 눌러 만두피를 만들어 만두를 빚기도 하고, 어떨 땐 그 채로 끓는 국물이 찢어 넣고 감자를 숭덩숭덩 쓸어 넣은 다음 수제비를 해 먹기도 했어요. 똑같은 밀가루 반죽을 칼국수로, 만두피로, 수제비로 변주하도록 돕는 빨간 기계의 마법.
달리기를 하며 저는 칼국수 기계가 된 기분이 듭니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에너지를 글로, 사진으로, 그림으로, 제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초여름부터는 매일 한 편의 에세이로 남겼고, 스마트폰 폴더 안에는 수 백장의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았고, 이 영감들은 편곡을 통해 제품으로도 생산이 될 것 같아요.
달리며 곁눈질로 본 늦여름의 둥근 잎 나팔꽃은 봄의 수레국화와 채도와 명도가 아주 닮았다고 느껴요. 어떤 어떤 꽃들이 영감이 되어 기록될까요? 사실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 것. 그것들을 모을 것입니다. 해 나가다 보면 물리적 반응, 화학 작용이 일어나는 그 지점이 있지 않을까요?
가을엔 주기적으로 누군가를 돕는 코치가 될 계획입니다. 실제로 저는 선생님이 아닌데도, 무심결에 저를 ‘선생님’이라 호칭하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심지어, 아들 친구들이나 조카들도 “선생님, 아니 아니 준서 어머니”, “선생님, 아니 아니 큰 이모” 할 정도니까요. 어릴 때부터 사주를 보면 늘 선생님이라 했었어요. 그런데 누군가의 모범이 될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과 <초록이 가득한 하루를 보냅니다>를 곁에 두고 너대여섯 번 읽었다는 분들을 만나며, 경험을 공유하길 바라는 분들이 늘며, 저는 점점 선생님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올해 목표 중 하나는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는데요, 한 해가 2/3가 다 갔는데도, 제 유머 실력은 제자리에서 뱅뱅 돌고 있습니다. 아들은 이제 그냥 포기하라고 반쯤 농을 섞어 장난을 칩니다. 세상엔 재미있는 사람도 있고, 진지한 사람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도, 남아 있는 올해의 1/3에는 유머를 겸비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혹시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경험을 나누어 주실 분이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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