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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Sep 11. 2020

새로운 발견

가을 나름의 진한 매력

"엄마, 어떻게 하면 젓가락질을 엄마처럼 할 수 있어?"

"응? 무슨 소리야? 젓가락질하잖아."

"아니, 엄마는 젓가락을 똑바로 잡는데, 나는 자꾸 옆으로 눕잖아."

"아~ 그거 육 학년 되면 할 수 있지!"

"그냥 육 학년이 되기만 하면 저절로 할 수 있게 돼?"

"그럼! 육 학년이면 할 수 있지."

과연 그럴까 싶어 얼굴이 심각해집니다.


  엄마의 젓가락은 젓가락과 젓가락 사이의 간격이 평행선을 이룹니다. 앞쪽 막대기는 엄지와 검지가 잡고, 다른 한 개는 손 사이에 끼워 세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으로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에선 젓가락의 각도가 음식에 수직으로 서 있으니, 그릇 위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음식을 집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되는대로 젓가락을 쓰다 보니, 모양이 영 예쁘지 않았습니다. 젓가락을 가위 모양으로 교차시켜 젓가락을 옆으로 눕혀 음식을 집었습니다. 좁은 상 위에서 젓가락질의 가동을 위해 넓은 면적이 필요했어요. 힘 조절이 되지 않으니 생선은 다 부서지고 좀처럼 잡히지 않습니다. 식사 시간마다 뒤틀린 젓가락이 참 불편했어요.


  드디어 육 학년이 되었는데도 젓가락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엄마께 여쭈었더니, 그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네가 바꾸려 노력해야 하는 거라 하셨어요. 세상에! 육 학년이 되면 저절로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했더니, 전혀 기억을 못 하십니다. 뭔가 조금 억울하지만, 그때부터 의식적으로 젓가락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일주일도 안 되어 엄마처럼 젓가락질할 수 있었습니다.

 

  달리기에도 초보자의 달리기와 숙련된 달리기는 금세 구분할 수 있습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몸의 움직임이 적습니다. 척추를 꼿꼿하게 세워 코어 근육에 긴장감이 느껴지고, 팔꿈치를 접어 박자에 맞춰 왼쪽 오른쪽 앞뒤로 흔듭니다. 고관절 근육에도 힘이 들어가고 온몸이 무게를 나눠 지탱하며 무릎 관절에 닿는 충격을 줄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초보 러너들은 주로 다리만 사용합니다. 내딛는 보폭이 크고 거칩니다. 체중이 무릎으로 바로 가는 모습입니다. 저 역시 러닝을 시작할 때 무작정 내질렀습니다. 오죽하면 지나가시던 할아버지 러너들께서 몇 마디를 하셨으니까요. 지금은 조금 더 척추기립근에 힘이 들어가고, 박자에 맞춰 움직입니다. 근육이 길들고 몸에 익는 덴 물리적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쩐지 가을 아침은 쓸쓸합니다. 오늘은 아예 작사가 이영훈 님의 곡을 리스트에 죽 넣습니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 잊을 수 없는 기억엔

햇살 가득한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우후후 후

여위어가는 가로수

그늘 밑 그 향기 더하는 데


  이 노래가 에어 팟으로 흐르는사이, 높은 가을 하늘은 아크릴 물감을 나이프로 문대 바른 듯 매끈하게 선명합니다. 그 아래 들판을 덮은 갈대가 보송보송 꽃을 피우고, 운중천이 흐릅니다. 살아있는 아름다움. 파랑, 초록, 갈색의 부드러운 흔들거림. 반 고흐의 그림이 눈앞에서 춤추고 있는 듯합니다. 이 순간, 암스테르담이 그립지 않습니다.


  언제나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쉬운 일들을 두고, 어려운 일을 찾아 헤맸는지 모르겠습니다. 가까이 있는 소중함을 보는 세심한 눈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운중천의 가을은, 언제든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이제야 가을이 덜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가을엔 가을 나름의 진한 매력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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