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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Dec 08. 2021

식물과 함께 놀자

책을 집필하고 있다. 가족 모두가 식물과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책이다. 그래서일까. 아들이 어릴 때 생각이 많이 났다. 이야기를 쓰다 쓰다 마무리할 무렵이 다가오니 더 좋은 에피소드는 없을까 하며 사진첩을 뒤지게 되었다.


어제는 구글 포토에서 여섯 살짜리 아들을 만났다. 회색 타일이 깔린 거실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전체 수리하고 들어갔던 아파트가 배경이다. 아이가 어려 미끄러지지 말라고 표면이 거슬거슬한 타일을 골랐는데, 양말이 하루가 멀다 하고 구멍이 났었다. 그 타일 위에서 꼬마는 손을 앞으로 모으고 다리를 올리며 "오~ 섹시 레이디" 하며 열심히 박자를 맞춘다. "아, 힘들어." 하고 소파로 와 몸을 눕히는 아이. 저 춤은 정말 신이 나서 춘 걸까, 엄마에게 보여주려는 의무감이었을까.


거실 한편엔 크리스마스트리도 보인다. 인조 나무에 빨간 구슬을 달고 반짝이 금줄을 드리운 다음, 불이 들어왔다 꺼지는 LED 전구를 감았다. 그리곤 유치원에서 그려온 노란 별 오너먼트와 자동차 오너먼트를 걸어 주었다.


중학생이 된 아들과 가끔 옛날이야기를 한다. 아들은 자기가 갖고 놀았던 장난감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아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Cars'를 보면 맥퀸 자동차를 사고, 맥퀸이 그려진 티셔츠와 운동화와 점퍼를 골랐다. 파워레인저, 또봇, 타요, 유희왕 카드, 포켓몬 카드, 레고를 지나왔다. 그 얘기를 해 주면 눈이 동그래지도록 놀란다.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문득문득 "엄마, 거기가 어디였지?" 하고 묻는 곳이 있다. 유치원 놀이터에서 모래를 가지고 놀았던 것, 계곡에 가 물놀이했던 것, 바다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놀았던 기억, 함께 딸기를 따 먹었던 것, 물이 똑똑 떨어지던 소리가 들리던 식물원. 모두 자연 속 경험이다.




출장으로, 여행으로 많은 곳을 다녔다. 내게도 선명한 기억은 공원, 식물원, 미술관에서 보냈던 시간이다. 자전거를 타고 국립공원을 지나 진입하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 몬스테라와 아레카야자가 자라는 실내 온실에서 늪으로 물이 똑똑 떨어지고 귀뚜라미가 또르르 울던 암스테르담 식물원, 나비가 곁을 날아다니며 펄럭펄럭 내는 날갯짓 소리를 내던 나비 온실, 모네의 수련 앞에서 들었던 피아노 연주와 소프라노의 음악회 같은 건 뇌세포에 스며든 것처럼 오래오래 되살아 난다. 열심히 자료 조사를 하고 들렀던 쇼핑센터, 아웃렛, 핫 플레이스는 여러 가지 색상이 뒤섞인 고무찰흙처럼 뒤죽박죽 엉켜 회색이 되어 버렸다. 그곳에서 무엇을 구입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주는 장난감은 '실물'이 좋다고 배웠다. 북유럽에선 아이들에게 돌멩이, 나뭇가지, 풀 같은 자연 속 장난감을 준다. 장난감이 귀한 시대를 살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을 추억해 보았을 때도 자연 속 놀이가 가장 먼저 기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을 추억해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도 동생들과 함께 엄마의 화단에서 풀 뜯어 샐러드인 셈 치고, 꽃잎을 뜯어 가니시를 만들고, 모래 속 조개를 찾아 벽돌 위에 올려 돌로 콩콩 찧어 소금인 셈 치고 놀았던 소꿉장난이다.


자연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다. 현관문을 나서 산책로만 찾아도 자연이 펼쳐진다. 무슨 놀이를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얘질 땐 ⟪식물과 함께 놀자》라는 책이 있다. 비룡소에서 나온 책으로 2003년에 출간되었다. 식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놀이들이 있다. 잼을 만들고, 꽃을 튀기고, 염색을 한다. 산책로에서 할 수 있는 놀이도 보인다. 낙엽을 잔뜩 주워 오리고 자르며 동물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조각칼로 당근과 감자를 파 도장을 만들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노는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몸을 움직이며 오감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져본 경험이 진짜 내 것이 된다. 아이들과 함께 세상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기는 정해져 있다. 길게 보면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정도 되겠다. 대체적으로 중학생이 되면 자기 세계가 생긴다. 부지런히 밖에서 몸을 부딪히며 우리만의 시간을 쌓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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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경 작가

매일 쓰는 사람


매일 쓰는 사람. 작가.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정화식물 200여 개와 함께 살며 실내 공기를 관리한 경험을 갖고 있다. 식물이 아낌없이 주는 산소와 초록 덕분에 삶이 달라졌다. 식물과 함께 사는 삶의 이로운 점을 글로, 강연으로, 방송으로 알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 『초록이 가득한 하루를 보냅니다』, 『우리 집은 식물원』 등이 있다. http://naver.me/G2FCw4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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