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Sep 08. 2017

생일 축하해!  

아들의 열 번째 생일.

엄마, 안아조라. 다른 건 잘 못 해 줘도 아가 때부터, 사랑해 오구오구 사랑하는 우리 아들.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안아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11살인 지금도 아들은 가끔 엄마 안아조라. 하며 품을 찾아든다. 이젠 오히려 내 등을 토닥토닥 거리기도 한다. 그래, 그래. 사랑하는 마음도 표현하고 눈에 보여야 알 게 되는 영역이니, 나중에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똑같이 꼭 안아주렴. 엄마와 있을 때에는 비교적 침착한 아들. 엄마는 자기를 90%쯤 이해하는, 세상에서 자기를 가장 많이 이해해 주는 사람이란다. 다행이다.


어젠 생일을 맞아 미리 골라둔 카드를 쓰고, 볼펜이지만 지우개로 지워지는 펜을 선물로 골랐다. 생일은 내일인데, 미리 줄까 어쩔까를 고민하다 물었더니, 지금 받아보는 게 좋겠단다. 편지와 선물을 건네니, 볼이 발그래해진 얼굴로 완전 집중해 카드를 읽어본다. "엄마 고마워. 사실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해주는 걸로만도 충분했는데, 선물까지 너무 고마워."라고 얘기한다. 이때의 눈은 순정만화 속에서 자주 보았던 감동받은 별표 눈이다. 새 펜으로 숙제해봐야지 하고 문제집을 꺼내 든다.


금방 수학책 몇 바닥을 풀고 와서는 "이렇게 금방 할 건데, 그냥 하고 놀걸. 왜 미뤘을까? 엄마 뭔가 기분이 좋아. 뿌듯하고." "그게 성취감이야. 엄마는 니가 뭔가를 해 냈을 때 기분 좋은 게 있다는 걸 알면 좋겠어. 그렇게 하다 보면 점점 더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되는 거야. 엄마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거든." 숙제를 마친 아들은 책상 위에 가지런히 펜을 올려놓는다. 아직 이럴 때도 저럴 때도 있는 편차가 큰 곡선을 그리지만, 그래도 아들은 점점 나아지는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믿는다.


아들은 이제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제일 중요해졌고, 가끔 떼로 몰려오는 친구들이 엄마와 통화하는 걸 들으면 알았어. 끊어.라고 청춘영화에서 많이 듣게 되는 톤으로 대사를 던진다. 어떤 친구들은 수준 높은 학원을 다니며 빡센 공부량을 소화하고, 어떤 친구들은 게임에 빠져 엄마와 갈등 상황들을 빚는다. 그런데, 나는 모든 것은 다 한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다닐 때에도 여러 친구들 있었지만, 지금 다 나름의 방식으로 밥벌이를 하며 책임지는 어른으로 잘 살아간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일은 별로 없다.


열한 살이 되고선, 같이 느끼는 감정, 소통, 공감대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대화의 방법이 조금 달라졌다. 무슨 얘길 하면 미안해, 고마워 라 이야기하고, 뭔가 조금씩 더 설명을 해야 하며, 아이가 표현하는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이니, 유치하고 재미없고 실없는 이야기를 해도 그저 탁 풀어놓고 같이 웃어준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할 수 없을 때에는, 아. 엄마한테 그 걸 얘기하고 싶었구나.라고만 말해줘도 모든 걸 다 가진 얼굴로 응!이라고 대답한다.


집에 놀러 온 아들 친구가 "이모, 이모는 아이들 입장을 많이 이해해 주시고 허용해 주시는 거 같아요. 진짜 부러워요."라고 이야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자기 생각을 조목조목 잘 이야기할까? 나는 네가 정말로 신통하다. 30년 전의 나보다는 훨씬 진화한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해줘 고마워. 그런데,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의 마음은 다 똑같을 거야."라고 이야기해 줬다. 정말로 부모 마음은 다 똑같지 않을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좀 더 건강하고, 깨끗하고, 함께 행복하길 바라는.


지금 하는 공부들은 앞으로는 쓸모없게 되는 지식이라 하지만, 그래도 열한 살에는 하루 한 시간~한 시간 반 정도는 책상 앞에 앉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얘기해 줬다. 무슨 일을 하던, 방향을 정하고 밀고 나가려면 책상 앞에서의 자세가 몸에 배어 있어야 할 것 같다. 스스로 체크하고, 시간을 배분하고, 집중해서 끝내고 여가를 즐기고 하는 훈련은 아직 나에게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니, 기왕이면 아들과 같이 훈련하고 싶다. 어른이 되기 전에 몸에 밴 습관으로 심어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


물론 아들도 실수를 하고, 그때마다 나의 마음도 불안하고 속이 상한다. 특히 외동 아이라, 친구들 간의 관계의 문제에서는 내 마음에도 태풍이 분다. 그래도, 이야기를 하고 알아듣게 설명을 하면 조금씩 달라질 거라 믿는다. 행동이 변화하는 건 어른인 나도 쉽지 않으니, 그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그저 너와 내가 함께 노력하자고 이야기한다. 네가 우리에게 온 그날부터 오늘까지, 아마 앞으로도,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딱 하나. 몸과 마음과 생각이 건강한 남자 어른으로 자라는 것. 그것뿐이다.

열번째 생일 카드. 축하한다, 아들. 너도 나중에 너랑 똑같은 아들을 낳아 키워보길 바래. ^^


작가의 이전글 캘리포니아의 아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