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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소설 빨간 모자

by 정재경 식물인문학자 라이프리디자이너

버스는 종점에 도착해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윤정이는 창문 밖으로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차고지에는 여러 대의 버스가 가지런히 서 있었다. 필통 속 연필처럼 정렬된 모습이었다. 버스가 멈추자, 검댕이 묻어 있는 걸레를 손에 든 아저씨가 뒤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오라이~ 오라이~”를 외치며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버스는 그의 손짓에 따라 천천히 후진했고,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칙” 소리를 내며 멈췄다. 윤정이는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실내화 주머니를 손에 들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마지막 계단에서는 나디아 코마네치처럼 두 발을 모아 펄쩍 뛰어 착지했다.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카락이 찰랑찰랑거렸다.


차고지에는 여전히 몇몇 버스들이 시동을 끄지 않은 채 엔진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윤정이는 그사이를 지나며 뒤를 돌아보았다. 걸레로 먼지를 닦아내는 아저씨들, 그리고 “오라이~”를 외치는 목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차고지 끝에는 작은 매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아이스크림과 사이다를 파는 아주머니가 심드렁한 얼굴로 부채질하며 앉아 있었다.


윤정이는 실내화 주머니를 앞뒤로 흔들며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바닥 시멘트엔 홈이 깊게 파여 있었다. 그 홈들은 오래되어 군데군데 깨져 있었고, 비가 오면 물이 고이곤 했다. 윤정이는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걸으며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며칠 전 윤서가 넘어져 무릎을 심하게 다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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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쓰는 사람. 10년간 식물 200개와 동거하며 얻은 생존 원리를 인간 삶에 적용, 식물인문학 기반 라이프 리디자인을 통해 회복탄력성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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