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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n 08. 2017

책들의 우주, 도서관

내게 맞는 별을 찾아가는 재미

새파란 하늘, 몽실몽실한 하얀 구름, 90도 가까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하는 높은 나무, 돌계단, 나지막한 건물, 빨간 벽돌, 깨끗한 햇살... 열 살 때쯤, 엄마 손에 이끌려 처음 찾은 정독도서관은 따뜻하고 깨끗하고 맑은 느낌이었다. 나무 아래 낮은 벤치엔 언니 오빠들이 앉아 책을 들고 공부를 하고 있었고, 나는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며 엄마 뒤를 종종 따라갔다.


어린이 열람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책 속에서 주인공들이 '금은보화'를 만났을 때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읽어도 읽어도 또 읽을 책들이 있었다. 디즈니 명작동화 60권을 하루인지 이틀인지 만에 다 읽었고, 도서관 책들을 읽어 치우는 게 행복해서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웠다. 책에 빠져 읽다 보면 금방 집에 갈 시간이 되었고, 먹다 만 음식을 두고 오는 것처럼 아쉬워 여러 번 고개 돌려 열람실을 보곤 했다. 항상 책이 고팠다.


그곳 정독도서관에서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친구 엄마가 수업을 진행하시는 선생님이셨고, 책을 읽고 발표하는 수업이었던 기억이다. 책을 읽는 것은 누구보다도 빨리 정확하게 읽어낼 자신이 있었으나 발표는 영 긴장이 되어 조마조마했다. 내 차례가 되었고, 역시 긴장해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해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선생님은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재경이 목소리는 은쟁반 위에 굴러가는 옥구슬처럼 예쁘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마음에 새겨진 격려.


형제가 많아 항상 시끄러웠던 집에서 책을 읽을 때는 아무도 것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아 좋았다. 제일 기억에 남는 선물 역시 책. 집에 6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이 왔던 날은 빨리 그 책을 다 읽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한 동안 읽는 기쁨에 행복했다. 갈색 표지들보다는 파란색 표지들의 책이 더 재미있었고, 더 여러 번 읽었다.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uihyeop/130037856188


소공녀가 라임 파티에 가지 못 해 속상해할 때, 그 '라임'이 뭔지 공감하지 못해 답답했고, 항상 셔츠 끝이 빠져나오는 '촌 도리노'의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옷을 단정하게 입혀 주고 싶었다. 15소년 표류기의 주인공들이 천신만고 고락 끝 돌아와 사진 촬영을 할 때, 엄마들이 재킷의 단추는 풀으라 했는데 왜 그랬을까? 이런 것이 궁금해서 항상 골똘히 생각했던 어린이.  


책이 주는 기쁨과 행복함은 내 일상의 큰 부분이라, 내 아이도 책을 좋아하길 내심 바랬다. 책이 항상 손이 닿는 곳에 있기를, 일상 속에서 가까이 하기를. 다행히 아들도 책을 좋아한다. 덕분에 나도 아들과 도서관에 가는 소소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아들은 주로 만화책을 보지만, 괜찮다. 뭐든 대단히 집중하면 뇌 속 신경 다발은 빼곡하게 자란다. 요즘에 아들은'먼 나라 이웃나라'를 읽느라 불러도 모른다. 다 읽었던 책들인데 너무 재밌다며 또 읽는다. 아마도 머리가 자라 더 많은 내용이 이해되기 때문이겠지.



책은 우주와 같아서, 나와 맞는 별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그동안의 어떤 현상을 분석해서 정리해 놓은 책, 상상 속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는 책, 일상 속 사유를 담은 책 등등. 작가의 세계관과 나의 가치관이 비슷할 때 사고 체계가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정말 좋은 책은 구입하고, 노란색 사인펜으로 문장을 칠하기도 하고, 포스트잇으로 잔뜩 스크랩하기도 한다. 그런 책은 두고두고 여러 번 본다.


바닥에 누워 책을 보다가, 몸을 뒤집어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이대로 스르르 낮잠이 들었던 어릴 적 평화롭고 느슨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확성기 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스르르 잠들곤 했었는데. 요즘 아들도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하늘을 보며 뒹굴 거린다. 이 아이 앞날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나는 모른다. 그래도 책과 신문은 긴 인생 여행길에 큰 힘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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