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빨간 모자 | 1980년대 가족의 이야기
학교는 오르막길 끝에 있었다. 언덕을 중간쯤 오르면 완두콩색 둥근 돔형 천장이 보였다. 강아지루 의원 정거장에서 내리면 등굣길 친구들과 함께 걸어 올라올 수 있었다. 언덕길 오르기 힘에 부치면 한 정거장 더 가 종점에서 내렸다. 종점은 학교 후문과 바로 연결되었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으면 현관이었다.
현관 앞엔 작은 닭장이 있었다. 철제기둥을 세우고 철조망 그물을 씌운 장에 공작새 한 마리와 닭 몇 마리가 살고 있었다. 닭은 계속 움직여 숫자를 세기 힘들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닭의 숫자는 점점 줄어든다고 했다. 어떤 아이는 수위 아저씨가 닭을 안고 가는 걸 보았다고 말했다.
가끔 공작새가 날개를 펼 땐 고약한 냄새가 풍겨 숨을 꾹 참고 지났다. 닭장 옆으론 시계탑이 서 있고, 항상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뒤로는 그네와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가 있었지만, 아무도 그 그네를 타지 않았다.
아이들은 교과서 속 그림처럼 언니나 동생 손을 잡고 사이좋게 학교에 왔다. 윤정이는 혼자 가방을 메고, 심심함을 못 이겨 길가의 돌멩이를 발로 차기도 하고, 보도블록을 징검다리인 셈 치고 겅중겅중 뛰면서 왔는데. 어떤 언니가 현관에서 동생 신발을 신발주머니에 넣어 주며 동생 등을 가만히 잡고, “수업 끝나고 만나.”라고 말했다.
윤정이는 부러운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윤정이도 동생과 같이 학교에 다니고 싶었다. 엄마가 윤아랑 같이 학교에 다니게 해 준다면 매일 백 점만 맞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윤정이는 오늘 아침에도 엄마를 졸랐다.
“엄마, 나도 윤아랑 같이 학교 다니고 싶어요.”
“윤아는 아직 학교 갈 때가 안 됐는데.”
“그럼 유치원이라도 같이 다니면 되잖아요.”
“그냥 양지유치원 가야지. 충암유치원은사립이라 비싸서 안 돼.”
엄마가 아침 상을 치우며 말했다.
“내가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도 열심히 도울테니까, 윤아랑 같이 다니게 해 줘요.”
“학교 늦겠다. 어서 가라.”
엄마가 윤정이의 등을 밀었다.
윤정이는 그 생각을 하며 의자를 끌어당겨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았다. 손을 허리 뒤쪽으로 모아 열중쉬어한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고 수업을 받았다. 작은 손으로 연필을 야무지게 쥐고서 뒷장에 글씨 자국이 나도록 꼭꼭 눌러 반듯하게 필기를 했다.
집에 올 때 윤정이는 버스에 앉아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간판의 이름을 읽으며 손가락으로 글자를 이리저리 옮기는 놀이를 했다. 택시번호판의 숫자를 두 개씩 더하고 빼며 입술을 중얼거렸다. 친구들이 택시 머리에 부채꼴 모양 등이 있으면 운이 좋다고 말했다. 부채꼴 택시 7개를 세었다. 행운의 숫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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