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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원은

소설 빨간 모자

나는 윤아랑 학교에 같이 가는 게 소원이었다. 우리 학교는 추첨에 당첨되어야 하는데, 그건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느님한테 조르는 것 밖엔 없었다. 매일 밤 자기 전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은 다음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하느님, 윤아랑 같이 학교 다니게 해 주세요. 엄마 말씀도 잘 듣고 동생들도 잘 돌볼게요.’ 윤아랑 같이 학교 가는 길을 생각하면 빙그레 웃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추첨날 아침은 처마 아래 고드름이 기다랗게 맺힌 추운 날이었다. 고드름에 햇빛이 부딪혀 눈이 부시게 반짝거렸다. 엄마는 머리에 분무기를 뿌려 다듬은 다음, 코트를 챙겨 입었다. 고드름처럼 반짝이는 크리스털 지갑을 겨드랑이에 끼고 집을 나섰다. “엄마, 오늘 너무 예뻐요. 꼭 당첨번호를 뽑고 오세요!”라고 기운을 불어넣었다.


“언니, 당첨 됐을까?”

“응, 그럴 거야. 걱정하지 마!”

그 얘기를 삼십 번쯤 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발그레한 얼굴로 “윤정아, 윤아야! 당첨 됐을까, 안 됐을까?”라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당첨이죠!”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랑 윤아는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윤아랑 학교에 가고, 같이 집에 오며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이젠 동생과 학교에 다니고, 현관 앞에서 신발을 갈아 신으며 다른 친구들처럼 “있다 여기서 만나자.”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하느님께선 싱거울 정도로 금세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나도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엄마 말씀도 더 잘 듣고, 동생들도 더 잘 봐야지.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이 오면 지루한 나 홀로 등교도 끝날 것이다.


부엌에서 쌀 씻는 소리가 들렸다. 도마에 칼이 닿는 동동동 바쁜 소리와 달그락 소리가 들렸다. 압력 밥솥 추가 내는 칙칙폭폭 소리와 함께 된장국 냄새가 구수하게 퍼졌다. 저녁 밥상 위엔 두부 된장국과 김구이, 장조림이 있었다. 나는 상을 보며 윤아 눈치를 보았다. 윤아는 된장국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상 앞에 앉는 윤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역시 윤아는 밥을 먹지 않았다. 배가 아프다고 했다. 혹시 된장국을 먹기 싫은 핑계일까? 밥에 보리차물을 부어 슬그머니 윤아 앞으로 밀었다. 윤아는 밥에 물을 말아먹는 걸 좋아했다. 윤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배에 손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윤아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걸 보니 된장국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엄마도 먹지 말라며 상을 치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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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경 식물인문학자···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8년째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쓰는 사람. 10년간 식물 200개와 동거하며 얻은 생존 원리를 인간 삶에 적용, 식물인문학 기반 라이프 리디자인을 통해 회복탄력성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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