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기특했다

치킨과 맥주

by 주토토

주사 맞는 것에도 소질이 있다면 마꼬는 특출 난 편이다. 출생 후 19일, 마꼬는 첫 예방접종 주사를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쿨하게 맞았다. 출생 후 한 달이 지나서 맞는 두 번째 예방접종도 그랬다. 처음엔 깜짝 놀라 울더니 이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눈물을 뚝 그쳤다.

우리 부부야 마꼬가 처음이니까 모든 갓난아이가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두 그런 것은 아니란다. 용감하게 주사를 맞은 마꼬가 어찌나 예쁘고 자랑스럽던지. 별 걸 다 자랑스러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아빠가 되긴 됐구나 싶었다.

소아과 진료 결과, 마꼬는 태열로 인한 여드름 외에는 건강하다고 했다. 병원에서의 기억이 좋게 남을 수 있도록 소아과 복도에서 우리 부부는 마꼬를 계속 칭찬했다. 그러면서 주사에 대한 이상반응이 없는지 30분 간 확인하고 귀가했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의 병원을 다녀왔을 뿐인데 왜 이리도 피곤하던지. 코로나 19 때문에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마꼬와 첫 외출한다고 너무 호들갑을 떨었던 것일까. 도저히 음식을 차릴 엄두가 나지 않아서 점심은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저녁은 바른 치킨을 주문했다.




마꼬를 재운 후, 아내와 치킨을 뜯다가 말고 나는 거의 달려가듯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맨 아래 칸에 블랑 1664 맥주 한 캔이 있던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출산 두 달 전에 아내 친구들이 놀러 와서 밤새 술을 마시고 유리구두처럼 남겨두고 간 맥주였다.

블랑 1664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나를 반겼다. 새벽 수유를 내가 분유로 하는 조건으로 아내도 맥주를 함께 마시기로 했다. 떨리는 손으로 캔을 따서 유리컵에 맥주를 나란히 따랐다. 평소에 그리 즐겨 먹지 않았던 맥주였는데 이 날따라 왜 이리 향기롭고 달콤하던지, 목구멍을 간질이며 넘어가는 맥주 한 모금에 감사할 지경이었다. 작년에 나는 간간히 술을 마셨지만 아내는 10개월 만의 알코올이었다. 10개월 만에 먹는 맥주 맛이 궁금해서 물어보려다 말았다. 아내의 표정이 이미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산후조리원을 퇴원하고 우리 부부끼리 육아를 한지 한 달, 서툴고 허둥댔지만 무탈하게 보낸 것만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격려하고 축하했다. 우리는 우리가 기특했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모유 수유 중에 술을 먹으면 절대 안 돼요. 엄마가 먹은 알코올의 5%가 모유로 아이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해요. 다만 술을 먹고 시간이 지나 몸 안에서 알코올이 분해된 이후에 모유수유를 하면 문제가 없다네요. 단, 충분히 술이 깨야만 해요. 그러므로 제일 좋은 타이밍은 밤에 아이를 재우고 육아 퇴근 후에 한 잔 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모유수유가 아니더라도 육아 중에 술을 먹으면 아이를 업거나 돌볼 때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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