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떡볶이와 바짝 소불고기
얼마 전, 처형님이 중학생 조카와 함께 집에 놀러 오며 가래떡을 사 왔다. 떡집을 지나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보니 아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아내는 감격에 겨워하며 그 자리에서 가래떡 두 개를 삼키듯 꿀꺽 먹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는 건 웬만한 애정 없이는 안 된다.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가래떡이 귀해 보였다.
아내와 6살 차이 나는 처형님은 어린 시절부터 아내를 살뜰히 챙겼다. 모든 일에 강단 있고 꿋꿋한 아내도 처형님 앞에서는 영락없는 여동생이 되고 만다. 이제 막 말을 배운 아이처럼 아내는 처형님에게 마꼬와의 일들을 두서없이 나열했다. 아이가 젖을 빨 때 성질을 내면서 젖가슴을 때린다는 둥, 조리원 동기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마꼬가 응아만큼은 압도적으로 잘한다는 둥. 처형님은 재미있어했고, 아내는 신이 났다.
처형님은 아내뿐 아니라 나도 동생처럼 챙겼다. 하남에 있는 처형님 댁에 놀러 가면 상다리 휘어질 정도로 음식을 차려주셨다. 초등학교 영양사 출신이라 요리 솜씨가 확실히 남달랐다. 달래장과 구운 김, 꼬막비빔밥, 매실 장아찌, 치킨 등등 몇 가지 음식은 충격적일 정도로 맛있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놀라운 건 아내의 식구들은 그 음식들을 당연하듯 먹는 것이었다. 처형님의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를 정도로 처가 식구들은 음식에 대한 기준이 높은 편인데, 특히 중학생 조카는 엄마의 질 좋은 음식에 길들여져 있을 테니, 내가 얼마나 땀이 났겠는가. 점점 12시가 다가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꼬를 사이에 두고 처형님과 한참 수다를 떠는 아내를 잠시 불렀다.
“점심을 어떻게 하지?”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된 줄 몰랐다며 아내는 말끝을 흐렸다.
“시켜먹을까? 아님 집에 있는 거 그냥 먹을까?”
아내가 잠시 입술을 앙 다물었다. 고민할 때의 습관이다. 보통 처형님이 놀러 오면 아내가 음식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내도 알고 있었다. 배달음식은 코로나 19 때문에 주저되었다. 그때, 그만 고민하라는 듯 마꼬가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배고플 때의 울음소리였다. 아내는 수유를 하러 아이 침대로 갔고, 나는 하릴없이 주방으로 향했다.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무엇보다 메뉴 선정이 최대 난제였다. 빨리 해야 하고, 중학생 조카도 먹을 수 있는 메뉴여야 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복기하며 유튜브에 저장해놓은 레시피들을 재빨리 훑었다. 리스트 중 하나의 음식이 일종의 계시처럼 눈에 들어왔다. 궁중 떡볶이. 처형님이 사다준 ‘가래떡’과 냉동실에 쟁여둔 소불고기가 머릿속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귀한 손님에게 어울리는 메뉴였다.
유튜브에 있는 레시피를 보니 궁중 떡볶이는 바짝 불고기에 떡과 야채를 추가하는 형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즈음 나는 모유 수유하는 아내의 단백질 보충을 위해 소불고기를 자주 애용했다. 소고기 치고 값이 싸고 얇아서 소화가 잘 되기 때문이었는데 소금과 후추 간만 해서 굽거나, 간장 베이스의 양념장으로 바짝 불고기를 만들곤 했다(물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실패했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 평소 바짝 불고기를 하던 방식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첫 번째로 불고기용 소고기의 핏물을 키친타월로 꼼꼼히 제거했다. 바짝 불고기는 말 그대로 수분이 느껴지지 않는 불고기다. 수분을 얼마나 잘 제거하느냐에 따라서 그 맛이 좌우된다. 핏물을 제거한 소고기를 잘게 다져야 하는데, 도마가 빨갛게 변하는 게 싫어서 사기그릇에 소고기를 넣고 가위로 잘게 잘랐다.
진간장 1 큰술, 다진 파 2 큰술, 설탕, 참기름과 다진 마늘 1 큰술을 넣고 잡내 제거를 위해 미림 1 작은술을 추가했다. 양념장의 반은 소고기 밑간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반은 나중에 채소를 볶을 때 넣어줘서 채소에도 양념이 밸 수 있게 했다. 예열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지 않고(이미 양념장에 참기름을 넣었으니) 밑간 한 고기를 넣고 고기끼리 엉키지 않게 잘 풀어주며 구웠다. 굽다 보면 고기에서 기름과 수분이 나오는데, 이는 참기름이 고기에서 기름이 나오도록 돕고, 양념이 고기에 밴 수분을 바깥으로 빼내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기름과 수분으로 프라이팬이 흥건해지면 고기가 구워지는 게 아니라 익어버리게 되니 이때부터 불 조절을 잘해야 한다. 바짝 불고기를 제대로 만들려면 석쇠나 토치를 이용해 직화를 해야 한다. 하지만 집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하니, 가스레인지를 중불로 하여 고기의 수분이 다 날아갈 때까지 구웠다. 이대로 식탁에 올리면 바짝 불고기 완성이다.
하지만 오늘 메뉴는 궁중 떡볶이인 걸 잊지 않고 손질한 표고버섯과 파프리카, 양파를 넣었다. 열을 받은 채소가 품고 있던 수분을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고기를 잘 구운 상태이기 때문에 걱정 없었다. 오히려 떡이 잘 익으려면 수분이 필요하므로 채소에서 물이 더 잘 나올 수 있도록 남겨놓았던 양념장을 넣었다. 그리고는 가래떡을 넣고 떡이 익을 때까지 충분히 볶았다.
수줍게 식사를 차렸다고 말하자 처형님과 조카가 놀라서 쳐다보았다. 반신반의하며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궁중떡볶이를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에게만 음식을 차려줘 봤지,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차려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뭘 만들든 아무리 망쳐도 아내는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편이지만, 처형님과 조카에게까지 인내심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처음으로 쓴 습작 소설을 학우들에게 보여줬을 때의 떨림, 설렘, 두려움이 플래시백처럼 온몸을 감쌌다. 조카가 젓가락을 들어 올리자 식은땀이 다 났다.
결과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아내는 맛있었다고 나를 위로해줬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내 첫 습작 소설도 망해서 술 마시러 간 기억이 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니, 나는 아내에게 다시 궁중떡볶이를 해줬다. 왕실 사람에게 대접하듯 정성을 들였다. 그 후로도 몇 번 궁중떡볶이를 하면서 나는 감을 제대로 익혔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제 아내는 내가 만든 음식 중 궁중 떡볶이를 최고로 친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우리야 빨간 떡볶이를 먹었지만 모유수유를 하는 산모 중 아이에게 혹시 해가 될까 봐 떡볶이를 먹지 않는 분도 계실 거라 생각해요. 그 고운 마음씨를 모르는 게 아니라서 이런 종류의 떡볶이는 어떨지 소개해 봤어요.
-제가 궁중 떡볶이를 실패했던 원인은 너무 푹 익혔기 때문인데요. 고추장 떡볶이는 졸여야 제 맛이지만, 궁중 떡볶이는 떡이 익으면 바로 조리를 끝내야 맛있더라고요. 그렇게 하기 위해선 떡에 미리 참기름과 간장으로 밑간을 하는 게 중요해요. 떡에도 간장을 사용할 걸 계산하여, 전체 간을 조절하셔야 될 거예요.
-저는 간장 베이스의 요리에 레몬 껍질을 그라인더로 갈아서 뿌려주곤 하는데요. 우연히 소불고기에 레몬 껍질을 올려봤더니 괜찮더라고요. 간장 베이스 요리 특유의 느끼한 맛이 확 줄어들고 레몬 향이 음식 전체에 퍼지면서 식욕을 돋게 해 주어서 종종 써먹곤 해요. 주의할 것은 레몬즙을 넣는 게 아니라 레몬 껍질만 넣어야 한다는 거예요. 레몬즙을 넣으면 너무 새콤해져서 맛이 묘해지니 참고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