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는 하고 싶은데, 떡볶이도 먹고 싶고

즉석 떡볶이

by 주토토

마꼬의 항문이 빨간 것이 내내 걸렸다. 정말 김치를 먹어서일까. 마늘이 듬뿍 들어간 알리오 올리오를 해먹었는데 그것도 영향이 있었을까. 인터넷을 찾아봐도 경험담과 귀동냥일뿐, 모유수유 중에 매운 걸 먹으면 안 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어보였다. 여러 잔소리에 지친 우리 부부는 소아과 검진을 기다렸다. 의사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모유수유 중에 ‘떡볶이’를 먹어도 되는지.

아내에게 떡볶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이 심지어 전쟁통일지라도 제일 먼저 찾을 음식일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그만큼 아내는 떡볶이에 늘 열광적이었다. 실제로 한때 아내는 1일 1 떡볶이를 시전 한 적이 있었다. 떡볶이라면 어떤 종류도 마다하지 않았다. 학교 앞 분식 스타일, 즉석 떡볶이, 짜장 떡볶이, 기름떡볶이, 밀떡, 쌀떡 모두 즐겨했다.

임신 중에는 갑자기 고등학교 앞에 있던 즉석떡볶이가 그립다고 하여 버스를 1시간 타고 간 적이 있다. 추억에 잠긴 아내는 고등학생 시절을 쫑알쫑알 얘기하며 나와 떡볶이를 나눠 먹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떡볶이 계의 숨은 고수라 불리는 ‘미림 분식’이었는데, 추억을 걷어내더라도 훌륭한 맛이었다. 한 번으로 모자라서 출산 두 달 전에 한 번 더 들렸다. 쫄면과 튀김만두, 볶음밥 2인분까지 시켜서 싹싹 긁어먹었다.

출산이 임박해오자 최후의 만찬 후보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서 혹시 하는 마음에 더는 가지 못했다. 출산 이후에도 갈 수 없었다. 아직 아이와 장거리 외출이 어려울뿐더러 코로나 19로 외식하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아내는 갈 수 없는 북녘의 고향처럼 ‘미림 분식’을 자주 그리워했다.

언젠가 임신 중이던 아내는 김도영 감독의 <자유연기>를 보고 모유 수유할 때 떡볶이를 먹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주변 지인들 말을 들어봐도 모유수유 중엔 고춧가루가 들어간 매운 음식을 가려먹어야 한다고 했다. 산모가 먹은 음식이 모유의 성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매운 걸 먹으면 아이가 배 아파하고 심하면 아이 항문이 빨갛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어떤 산모는 1년 동안 김치를 먹지 않았다는 후기를 발견했다. 집에서 떡볶이를 해 먹으려고 했던 계획조차 산산조각 나자 아내는 몹시 기분이 가라앉았다. 술과 커피를 못 마셔도 전혀 개의치 않아했는데, 떡볶이를 먹을 수 없다는 건 아내에겐 실로 청천벽력,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뭘 해도 떡볶이엔 못 미치겠지만 다른 맛있는 걸 해주기 위해 산후조리 식단을 검색하다가 나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국제 모유수유전문가의 영상과 몇몇 언론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수유 시 매운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맘똑 티비>를 운영하는 국제 모유수유 전문가는 아이가 변을 지리는 건 엄마가 매운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용쓰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항문이 빨간 것에 대해선 마꼬의 소아과 의사가 얘기해주었다. 혹시 매운 음식을 먹어서 그런 거냐고 묻자 소아과 의사는 웃었다. “그런 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얘기고요. 엄마 아빠도 대소변이 찬 기저귀를 바로바로 갈아주지 않으면 엉덩이가 빨개질 거예요. 아시겠어요?” 매운 음식에서 원인을 찾으려다가 우리의 게으름을 인증한 셈인데, 반성함과 동시에 우리는 내심 기뻤다. 그럼 떡볶이를 먹어도 되겠다면서 소곤대며 좋아했던 것이다(마꼬야, 철 없는 부모를 용서해라).

물론 매운 음식을 먹으면 좋지 않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더 많다. 무엇이 확실한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둘 다 실험을 통해 밝혀진 과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수유 시엔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유수유를 하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조언일 것이다.

덧붙여, <맘똑티비>의 국제 모유수유 전문가는 이렇게 조언했다. 캡사이신이 들어간 떡볶이는 산모에게 무리를 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며, 매운 음식뿐 아니라 만일 어떤 음식을 먹었는데 아이가 복통을 느낀다면 체크했다가 모유수유 중에는 특정 음식 섭취를 피하는 게 좋다고 했다.




맵지 않게 하리라 다짐하고 나는 ‘미림 분식’ 스타일의 즉석 떡볶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아무래도 양념장이었다. 양념장은 <집밥 백선생> 레시피를 참고했는데, 고춧가루와 고추장 비율을 조금 낮게 잡아 매운맛을 낮췄다.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단 맛은 설탕을 이용했다. 떡볶이에 조청을 사용하면 설탕보다 더 깊은 맛이 나는데, 단유 할 때 엿기름을 쓴다는 얘기가 떠올라서 혹시 몰라 일반 설탕을 넣었다.

채소는 냉장고에 있는 걸 사용했다. 양파와 파를 그 위에 깔고 떡과 어묵, 라면을 쌓고 양념장을 올린 다음 육수를 부었다. 물은 일반 생수보다 멸치 다시마 육수를 우려내서 재료가 자작하게 잠길 정도로 붓고 끓였다. 이때가 제일 기분 좋다. 빨간 국물이 보글보글 끓고 야채와 떡과 면이 익어가는 걸 지켜보는 이 순간.

맛은 당연히 ‘미림 분식’이 훨씬 맛있겠지만, 집에서 휴대용 버너를 사용하여 분식집 분위기를 내니 아내의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떡볶이를 싹 비우고 나선 볶음밥도 되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원하신다면 당연히 된다면서 계란 하나를 숟가락으로 잘게 부셔 밥과 섞은 다음, 누룽지가 생길 때까지 볶아줬다. 김가루를 촤르륵 뿌리고선, 치즈를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찌 맛이 없을 수가 있으랴. 우리 민족은 뭐든 다 볶아먹는 볶음밥 민족인데. 아내를 위해 일일 개장한 토토 분식, 제대로였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매운 걸 먹으라고 조장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자극적일 정도로 너무 매운 음식이 아니면 적당히 먹어도 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워낙 산모에게 ‘아이를 생각해서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많다 보니,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들은 각자가 스스로 판단하는 게 어떨까 싶었어요.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떡볶이에는 다진 마늘을 넣지 않아요. 다진 마늘을 넣으면 찌개 같은 느낌이 나거든요. 떡볶이 특유의 맛을 살리려면 마늘이 아닌 파와 양배추를 많이 넣어서 단 맛을 살리는 게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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