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네가 아니어도 우린 잘 살 거야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

by 주토토

산후조리 식단을 준비하며 가장 걸림돌이었던 대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미역국이었다. 조리원에서부터 산모들은 미역국을 먹기 시작한다. 짧게는 삼칠일(생후 21일) 혹은 산욕기(6주)까지, 모유수유를 하는 경우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도 먹는다. 그만큼 미역국은 한국 사회에서 산모의 회복과 모유수유 면에서 오랜 세월 인증받은 완벽한 음식으로 여겨진다.


미역국이 좋은 걸 모르는 건 아니다. 엽산, 철분, 칼슘과 요오드,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미역국은 그 자체만으로 영양의 보고다. 문제는 우리 부부가 미역국을 얼마 먹기도 전에 질려버렸다는 것이다.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고 본가에서 보내온 1미터 길이의 장승처럼 크고 기다란 기장미역 다섯 줄기를 볼 때마다 나는 절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어디 놓을 공간이 없어서 냉장고 위에다 가로로 올려두었는데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가슴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우리 부부가 5년을 먹어도 다 못 먹을 양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비단 우리 부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국인의 식생활은 한식뿐 아니라 중식, 일식, 양식 등 다양해졌는데 왜 산후조리 식단은 미역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미역국이 칼슘과 요오드가 많아서 산모의 산후 영양에 큰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하루 세끼 미역국만 먹는 것은 오히려 요오드 과다 섭취로 영양 불균형이 올 수 있는 것인데, 왜 산모들에게 미역국을 먹이지 못해 안달인 것일까. 이쯤 되니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우리 부부가 미역국을 슬슬 피하게 된 건 미역국 음식 자체가 아니라 미역국에 내포되어 있는 '산모들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는 한국사회의 고정관념 내지는 강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루 세 끼, 하루 세 번의 즐거움을 미역국으로만 채우고 싶진 않았다. 음식 섭취는 즐거워야 하고, 다양하게 먹는 것이 산모의 영양에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산모에게 꼭 필요한 영양소인 칼슘, 철분, 비타민, 단백질과 섬유소를 제공하기 위해 몸에 좋은 채소와 질 좋은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을 목표로 나는 아내의 산후조리 식단을 짜려고 노력했다. 채소의 경우엔 범주를 뿌리, 줄기, 잎, 열매로 나눴고, 하루에 이 네 가지를 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식단을 고민했다. 단백질은 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단백질로 나눠서 고기는 적당히 즐길 정도만 먹고 콩, 두부, 견과류로 할 수 있는 요리를 생각해봤다.


이렇게 쓰고 보니 굉장히 거창해 보이지만 그때의 마음가짐은 겨우 이 정도였다.


‘미역국, 네가 아니어도 우린 잘 먹고 잘 살 거야.’




우선은 시금치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엽산, 철분, 칼슘, 단백질 함량이 높아 시금치는 산후조리 재료로 으뜸이다. 바다에 미역이 있다면 땅엔 시금치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그런데 내가 할 줄 아는 시금치 요리라곤 시금치 버터 볶음과 건새우 시금치 된장국밖에 없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매일 그것만 먹을 수 없으니 난감했다.


유튜브를 열심히 검색하던 중, 나는 우연히 바질이 아닌 시금치로도 페스토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페스토의 재료인 잣은 산모의 자궁 출혈을 막아주고 미역처럼 오로 배출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계시처럼 때마침 아내가 밥이 물리다며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옳다 커니 싶어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했다.

페스토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믹서기에 시금치를 비롯한 양파, 마늘, 잣과 아몬드, 파마산 치즈가루를 넣고 마지막으로 올리브유를 충분히 부어준 다음에 갈면 된다. 채소들은 믹서기에 잘 갈릴 수 있도록 칼로 작게 손질해주면 되고, 시금치는 식물성 독즙인 수산을 제거해주기 위해 뜨거운 물에 데쳤다가 차가운 물로 헹궈줬다. 잣과 아몬드는 팬에 기름을 두르지 않고 살짝 구워 고소함을 배가시켰다.

믹서기에 간 페스토를 한번 맛보았는데, 이상했다. 내가 만들었는데 맛있는 것이다. 이럴 리가 없었다. 잣과 아몬드의 고소함, 양파와 마늘의 알싸함, 치즈의 감칠맛을 올리브유를 휘감은 시금치가 모두 품어주는 느낌이었다. 정말로 내가 요리에 소질이 있나봐. 혼자 들뜬 나는 내가 만든 시금치 페스토를 믿기 어렵다는 듯 계속 맛보았다.

생애 첫 페스토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붙은 나는 바로 면과 소스를 준비했다. 면에 간이 배도록 물에 소금을 넣고 끓으면 면을 넣었다. 면이 익는 사이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편 마늘과 페퍼론치노를 넣어 기본 바탕을 만들어 놓았다. 소금간이 된 면수를 오일에 넣고 오일과 면수가 섞이도록 나무젓가락으로 열심히 저어주었다. 오일과 물은 가만히 두면 섞이지 않는다. 오일 위에 물이 둥둥 떠있는 이상한 오일 파스타를 먹고 싶지 않으면 열심히 섞어줘야 한다.

면의 알덴테가 10분 기준이라면 8분만 삶고 오일이 있는 팬에 면을 옮겨주었다. 면이 오일과 잘 섞이도록 또 열심히 나무젓가락으로 섞어줬다. 면과 오일, 물이 충분히 섞여 유화된 것 같으면 시금치 페스토를 넣고 나무 젓가락질을 뱅뱅뱅 돌려 면이 초록 빛깔로 물들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취향에 따라 버터 한 덩이와 파마산 치즈를 뿌려주면 끝.

파스타만으론 산모에게 필요한 영양이 부족해보여서 파스타를 만드는 동시에 구운 닭가슴살 샐러드도 만들었다. 오이를 보기 좋게 썰고 싶었는데, 채 썰기를 할 줄 몰라서 당황해하다가 뭉텅뭉텅하게 잘랐다. 토마토와 오렌지도 대충 잘랐다. 소스는 오렌지 한 조각을 으깨 한 큰 술 정도의 즙을 만들고 그 위에 올리브유 세 큰 술, 식초 한 큰 술, 소금과 설탕을 한 작은 술을 넣어 샐러드에 고루 뿌려주었다.


안방에서 마꼬를 재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아내는 내내 불안했다고 했다. 부엌에서 평소 들을 수 없었던 믹서기 소리와 뚱땅뚱땅 뭐가 부서지고 망가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 과연 식사를 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식탁 위에 있는 이 초록색 파스타는 대체 뭐람. 당혹스러워하는 아내의 표정을 읽고 나는 변명하듯 시금치 페스토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아내는 더 놀라는 표정이었고, 맛을 보고는 정말 놀라고 말았다. 아마 나처럼 맛있어서 놀란 거겠지, 그치?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저는 한번 먹을 만큼만 페스토를 만들었는데, 몇몇 유튜버 분들 보니 많이 만들어 열탕 소독한 병에 보관해서 파스타뿐 아니라 빵에도 같이 먹더라고요. 다음엔 저도 그래야겠어요.

-샐러드를 준비할 때는 한 가지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산욕기까지 산모는 차가운 것보다 따듯한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아요. 그래서 한 끼 식사로 샐러드만 먹는 것보단 그것을 커버해줄 수 있는 따듯한 음식을 곁들였어요. 저 같은 경우는 차가운 생 채소를 바로 먹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식사 30분 전에 냉장고에서 미리 채소를 꺼내 놓았어요. 또한 구운 닭가슴살을 샐러드에 올려서 고기의 온기로 샐러드의 한기를 살짝 빼주는 방식으로 샐러드를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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