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도 칭찬도 받고 싶지 않아요

버섯 들깨 초당순두부

by 주토토

아내는 임신 전에 입었던 청바지를 입어보려 시도했다가 절망하며 화를 내기도 했지만, 대체로 신나 보였다. 출산 후 혼자 하는 첫 외출이라 한껏 들뜬 얼굴이었다. 저리 꾸미고 가는 곳이 고작 산부인과라는 게 안쓰러웠지만. 그런 아내에게 바로 오지 말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콧바람도 좀 쐬고 오라고 했다. 아내는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매번 나와 산부인과에 같이 갔는데 이제는 혼자 가게 되어서 아쉽다고 했다. 나도 섭섭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시원하기도 했다. 산부인과에 가면 느꼈던 불편함을 더는 겪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작년 7월부터 우리 부부는 함께 산부인과에 갔다. 바쁘다는 핑계로 태담이나 태교도 못해주는 못난 아빠였지만, 운 좋게도 매번 산전검사 일정에 맞춰 휴가를 내서 꼬박꼬박 마꼬를 볼 수 있었다. 마꼬가 잘 지내는지 보고 싶은 마음만큼 걱정하는 마음이 컸다. 마꼬는 우리 부부의 계획에 없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엽산 한 번 먹지 않고 삼십 대 중후반에 아이가 덜컥 생기니 겁부터 더럭 났다. 만일 아이의 건강이 안 좋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늘 마음을 졸였다. 겉으론 표현 안 해도 아내가 불안해하는 걸 느꼈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숱한 야근의 밤이 생각난다) 산부인과를 같이 가고자 했다. 상상만 해도 싫었던 것이다. 만일 의사로부터 안 좋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 아내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을 결코 아내 혼자 감당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남자들은 딱히 하는 게 없다. 딱히 하는 게 없으니 방관하고 책임에서 물러나며 결국 육아에서도 자연스레 멀어진다. 나 역시 바쁘다는 핑계로 임신 기간 동안 아내와 뱃속 아이에게 특별히 무언가를 해준 기억이 없다. 반성한다. 그래서 적어도 출산부터는 육아휴직을 내서 나의 위치를 보호자 자리에 두고 싶었다. 아내가 우리 가족을 대표해 아이를 낳는 고통을 겪는 것이니,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 있거나 아내가 필요한 게 있다면 아내와 아이의 보호자로서 뭐든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선택했던 산부인과의 의료진은 보호자로서의 나의 기대와 의지를 꺾어 버렸다. 가족 병동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 대기 기간 동안 보호자는 병실 밖으로 나가 있으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내가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의사나 간호사는 아내의 자궁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아이 상태를 확인하는 내진을 했다. 나는 보호자로서 아내의 상황과 아이 상태를 지켜보고 싶었으나 의료진은 자꾸만 나를 내보냈다.

하도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왜 나가야 하죠? 적당한 이유가 없는지 그들은 얼버부렸고 나는 강짜를 부리며 나가지 않기도 했다. 별 수 없다는 듯 넘어가는 간호사들도 있었지만 담당교수는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나가라고 명령했다. 의사의 박력에 나는 깨갱하며 복도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 병동에서 내진하는 걸 지켜봐선 안 되는 의학적 이유가 있다면 설명해주길 바랐지만 나는 끝내 이유를 들을 수 없었다.

12시간 진통 끝에 제왕절개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내 곁을 지키고 싶었지만 의사는 이 병원에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서 또 나가 있으라고 했다. 출산 이후 아내가 입원해 있을 때도 의료진이 오면 나는 나가 있어야 했다. 수술 부위를 소독하는 것뿐인데 내가 왜 나가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소독을 하기 위해 환자복을 잠시 벗는 것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만일 친정 엄마나 언니가 곁에 있어도 나가 있으라고 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명료해졌다.

의료진은 나를 아내의 ‘보호자’가 아닌 ‘남편’으로만 대우하는 듯했다. ‘남편’에겐 탯줄을 자르는 역할 외에는 아무 의무도 책임도 부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내가 겪은 임신과 출산의 과정 동안 ‘남편’은 자연스레 배제됐다. 나는 그런 부분이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의료진을 탓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남편’들이 초래한, 혹은 조장한 출산 문화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출산 장면을 보면 아내와의 잠자리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티비 토크쇼에서 여전히 하는 세상인데, 어찌 의료진을 탓할 수 있으랴.

분위기가 이렇게 조성되어 있으니, 나처럼 보호자 ‘행세’를 하려는 남편이 나타나면 유난 떤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마찬가지로 나처럼 아내와 함께 매번 산전검사를 받으러 가면 칭찬을 받기도 한다. 그 누구도 매번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는 엄마들을 칭찬해주지 않는데, 왜 남편들은 칭찬받는 것일까. 나는 의료진에게 유난 떤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저 아내와 아이의 보호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내도 아이도 건강하고 무탈해서 다행이었지만 나는 무대가 끝난 뒤의 풍선처럼 한껏 맥이 빠지고 말았다. 당시엔 아내가 몸이 많이 안 좋고 정신이 없어서 이런 내 기분을 말할 기회가 없었다. 오늘에서야 속 얘기를 꺼내자 아내는 주의 깊게 들어주었다. 페미니스트인 아내의 격양된 눈빛과 격한 호응이 오히려 엉겨있던 내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그러고 보면 임신과 출산 기간 동안 아내만이 나를 ‘남편’, ‘남성’, ‘아빠’라는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보호자’로서 노력하는 내 모습을 온전히 존중해줬던 것 같다.




정말로 콧바람을 제대로 쐬고 온 것인지 한결 생기가 도는 얼굴로 돌아온 아내는 진료 결과가 대체로 좋다며 기뻐했다. 피검사와 소변 검사 결과는 정상, 부기도 체중도 많이 줄었으며, 수술 자국도 잘 아물고 있다고 했다. 아이의 시험 성적표를 받아 든 것처럼 나도 기뻤다. 나름 아내의 산후조리를 돕는 입장이었기에 아내의 원활한 회복은 기다리던 희소식이었다.


아내의 회복 소식만큼이나 나는 아내를 몹시 기다렸다. 아내가 외출한 사이 아빠와 처음으로 단 둘이 있게 된 마꼬가 뭐가 그리 서러운지 몸을 심히 비틀며 연신 울었기 때문이다. 마꼬를 달래느라 혼이 쏙 빠진 나는 ‘보호자’고 ‘남편’이고 뭐든 간에 아내에게 빨리 집에 돌아와 달라고 얼마나 전화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직 여흥이 남은 아내에게 이제 다시 육아의 세계로 돌아오라는 듯 마꼬를 냅따 안겨주고 나는 잠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내가 마꼬의 젖을 물려주는 동안 나는 겨우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체력적으로 뭘 차리기 힘든 날에는 초당 순두부가 제격이었다. 강원도 여행에서 초당 순두부 맛을 본 이후로 우리는 종종 마트에 있는 시판용 초당 순두부를 사다 먹었다. 이미 조리가 다 된 상태라 거의 라면 급으로 끓이기만 하면 되는 거라서 쉽게 해 먹을 수 있었다.


보통 멸치 다시마 육수를 넣은 순두부에 파를 자박자박 넣은 간장을 둘러 먹기도 하는데, 나와 아내는 순두부에 버섯과 들깨를 넣어 맑게 먹는 걸 좋아한다. 냄비에 들기름을 살짝 두르고 키친타월로 닦은 버섯을 사정없이 잘게 다져서 볶아줬다. 버섯은 아무 종류나 상관없이 많이 넣으면 맛있는데, 의외로 팽이버섯이 들어가면 식감이 살아있어서 먹는 재미가 난다. 여기에 순두부를 넣고 멸치 다시마 육수를 넣어주면 끝. 기호에 따라 풋고추와 들깨가루를 추가하고 한소끔 보글보글 끓이면 버섯 들깨 순두부가 완성이다.

모유 수유하느라 기력이 빠진 아내는 고소하고 담백한 순두부를 보약처럼 떠서 먹었다. 아내는 진료 결과를 얘기하며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아직 예전만큼 몸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잘 챙겨준 덕분에 몸이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괜히 생색을 내면서 더 칭찬해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칭찬받기 위해 행동하지 않으나, 아내에게만큼은 매일 칭찬을 받고 싶었다. 어쩌면 이 요리들은 모두 아내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식사 내내 나를 더 칭찬했고, 나는 아내에게 순두부 한 그릇을 더 떠주었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보통의 순두부는 간수를 응고제로 사용하는 반면, 초당 순두부는 간수가 아닌 깨끗한 바닷물을 사용해 쓴 맛이 없고 깔끔한 것이 특징인데요. 하지만 시판용 초당 순두부와 함께 포장된 물을 냄비에 함께 끓였더니 기대한 것보단 맛이 아쉽더라고요. 개인적으론 확실히 멸치 다시마 육수로 국물을 만드는 게 더 좋았어요.


-초당 순두부가 아닌 보통의 순두부를 사용하는 경우엔 체에 밭쳐 물기를 빼고 소금을 고루 뿌려주었어요. 순두부에 달라붙은 염분이 삼투압 현상을 일으켜 순두부에서 간수를 빠져나오게 돕거든요. 간수 특유의 쓴 맛을 제거하면 순두부가 훨씬 부드럽고 맛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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