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제발 집에 오지 마세요

해신탕과 닭죽

by 주토토
엄마가 해준 해신탕
닭가슴살과 해신탕 남은 국물로 만든 닭죽

삼칠일까지 외부인 출입을 금하는 문화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가족까지 출입을 금하는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코로나 19는 출산의 풍경도 바꿔놓았다. 병원에선 보호자 1인 외 출입 및 면회를 제한했다. 조리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조리원은 보호자 1인마저 출입을 금했다고 한다.

코로나뿐 아니라 코로나 이후에도 바이러스에 대한 방역 강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이 모두 모여 출산을 축하해주는 풍경은 이제 없다. 옛말이다. 아이의 안부는 사진으로 보여주고, 정 보고 싶으면 화상 통화를 하면 된다. 축하는 전화나 계좌이체로 해주시라.

하지만 말이 쉽지, 가족 입장에선 간단하지 않다. 특히 엄마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의 급작스런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엄마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손주가 보고 싶어도 절대로 오시면 안 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은 뜻대로 안 되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매일 손주가 보고 싶고 아른거려서 애가 닳았다. 아침마다 사진을 보내드려도 부족한지 수시로 전화해 사진을 요청했다.

조리원에서 퇴원하면 코로나도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정부에선 사회적 거리두기를 더 강조하는 추세였다. 손주가 집에 가는 날만 벼르고 있던 엄마는 어쩔 줄 몰라하며 울상을 지었다.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이성적 사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자를 봐야겠다는 비이성적 사고가 하루에도 몇 번씩 치고받고 싸우는 듯했다.

급기야 엄마는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여 코로나로부터 자신은 안전하다는 걸 내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것은 일종의 시위였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엄마를 보고 있는 것도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했다.


"엄마, 제발 지금은 집에 오시면 안 돼요."


매정하게 말하는 나를 엄마는 야속해했지만, 나는 죄송하다면서도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엄마와 매일 실랑이를 벌이다가 엄마의 눈물겨운 투쟁에 마음이 돌아선 나는 딱 10일만 더 지켜보고자 했다. 엄마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처음엔 저항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릴없이 제안을 수락했다. 손주를 위해서라면 참겠다면서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드디어 그 날이 도래했다.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엄마가 집에 전격 방문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본인이 준비한 손소독제로 1차 방역을, 화장실로 직행하여 비누로 손을 닦아 2차 방역을 실시했다. 그리곤 역시 직접 준비한 소독약을 꺼내 외투를 소독하며 마지막 방역까지 완료했다. 이제 괜찮으니 마스크를 벗으시라고 했는데도 엄마는 끝끝내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아버지는 차를 끌고 엄마와 함께 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아들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버티시다가 겨우 설득하여 멀찍이서 손주 얼굴만 보고 가셨다).

소독약으로 목욕재계를 마친 엄마에게 마꼬를 처음으로 안겨드렸다. 엄마는 유리 공예품을 안듯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았다. 눈을 마주치고 이름을 부르고 자신이 할머니라고 소개했다. 마스크 너머로 엄마의 웃음이 보였다.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으리라.

신기하게 마꼬도 평안해하며 엄마 품 안에서 잠이 들었다.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도 엄마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겨우 현실세계로 돌아온 엄마는 그제야 천 보따리에 싸여있는 짐을 풀었다. 요술 보따리처럼 반찬과 봄나물이 쏟아져 나왔다. 고생한 며느리에게 먹이고 싶어서 처음 해보셨다는 해신탕도 있었다.

한바탕 잔치 같던 첫 만남을 마치고 엄마는 겨우 발걸음을 돌리셨다. 그리도 좋은가 싶으면서도 그리도 좋아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감사했다. 저런 따뜻한 눈빛으로 어린 나를 바라보셨겠구나 싶었다.


해신탕을 끓여서 식탁을 차렸다. 봄이면 꼭 먹는 돌나물과 두릅도 챙겨주셔서 초고추장을 만들어 곁들였다. 토종닭과 낙지, 전복이 들어간 해신탕은 구수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맛의 밸런스였다. 산모에게 자극이 될까 봐 간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닭과 낙지와 전복이 따로 겉돌지 않았고, 어느 하나 특출 나지 않게 고루 맛있었다. 살을 모두 발라먹고 국물까지 깔끔하게 먹은 아내의 모습을 엄마는 꼭 보고 싶었을 것이리라. 음식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그런 것이니까. 대신해 내가 아내를 눈에 담았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닭죽을 끓일 때, 꼭 불린 쌀을 사용하셔야 해요. 저는 30분만 불려서 했더니 쌀이 육수를 몽땅 흡수해서 나중엔 물기 하나 없는 리조또처럼 되고 말았어요. 이럴 땐 당황하지 말고 물을 계속 추가해주세요. 시간을 줄이려면 믹서기에 쌀과 물을 넣고 갈아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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