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맞은 시절

도다리 쑥국

by 주토토

산책길에 핀 꽃들처럼 집 근처 재래시장에도 좌판마다 봄나물이 깔렸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새싹을 틔운 봄나물은 유독 향긋하고 생생했다. 때는 4월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었다. 코로나 19만 아니었다면 완벽한 봄이었을 것이다.

꽃봉오리처럼 웅크려 엄마 뱃속에서 겨울을 보낸 마꼬도 눈에 띄게 성장하였다. 엄마의 젖을 빠는데 온 힘을 바치고 20분이 지나면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 먹고 자고 먹고 자며 일주일에 400g씩 체중이 늘었다. 하루하루 못하던 동작을 해내기도 했다. 신비롭다는 듯 흑백 모빌에 눈을 맞추고 힘차게 팔과 다리를 꼬물거렸다. 신생아의 젖비린내가 옅어지며 아이 특유의 순한 분 향이 꽃내처럼 일었다. 그 향내가 꼭 봄을 닮아 마꼬를 품에 안고 있으면 봄꽃 속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마꼬에게 봄꽃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외출이 무서워서 망설였다. 긴급재난문자가 울리면 자연스레 몸서리가 쳐졌다. 언제쯤 마음 편히 나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어서 더 지쳤다.

이럴 때일수록 기운을 내려고 식탁에 자주 봄을 차렸다. 아내의 산후조리를 핑계로 올해는 봄나물을 실컷 먹었다. 달래장을 해서 구운 김을 찍어 먹고, 잘 다듬은 냉이는 알리오 올리오에 넣어 먹었다. 두릅은 데쳐서 초고추장을 찍어 먹고, 샐러드로 해먹은 돌나물도 별미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쑥이었다. 어렸을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그 향이 왜 이리 좋아졌는지 모르겠다. 전을 부쳐 먹고, 구수하게 된장을 넣고 끓여 쑥국을 해 먹었다.


쑥이 오래전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들의 부인병을 예방하는데 쓰였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론 더 부지런히 아내에게 쑥을 먹였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쑥에 함유된 시네올이란 성분이 산모의 자궁수축과 생리통을 완화시켜주고,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여 강력한 해독 작용과 피로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처럼 몸에 좋은 쑥을 이용하여 꼭 해보고 싶은 요리가 있었다. 20대 중반에 홀로 통영에 여행 가서 맛보았던 도다리 쑥국을 나는 한 동안 잊지 못했다. 구수한 된장국에 쫄깃하고 부드러운 도다리 한 마디를 통째로 넣고 여린 쑥으로 향을 낸 도다리 쑥국은 봄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제철 별미였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파는 곳을 찾을 수 없어서 입맛만 다시다가 우연히 음식점을 한 곳 알게 되었다. 을지로에 있는 통영 향토음식점인 ‘충무집’에선 봄 한 철 동안 도다리 쑥국을 팔았다. 연애시절, 아내의 생일 때 처음 그곳에 가본 우리는 도다리 쑥국에 푹 빠져 매년 봄이 온 걸 축하하듯 충무집에 갔다.

하지만 포카를 입양하고 나서부턴 가지 못했다. 아직 어린 강아지를 집에 두고 멀리 외식을 갈 수 없었던 것이다. 포카가 크면 가야지 했던 것이 몇 년이 흘렀다. 사람 마음이란 것은 참 기묘해서 한번 발길을 멈추면 다시 발길을 내는 것이 어려워진다.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 언제든 열려 있는 식당조차도 한번 마음의 길이 끊기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그게 너무 당혹스러워 때론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별 수 없었다. 시절이 가버린 것이다.




‘제철’의 뜻은 알맞은 시절이다. 알맞은 시절에 태어난 과일과 채소, 생선은 그래서 약이 되나 보다. 아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니, 올해는 끊긴 길을 새로이 내고 싶었다. 봄이 우수수 꽃을 떨어뜨리기 전에 나는 아내에게 도다리 쑥국을 선물처럼 요리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리 비늘이 제거된 싱싱한 도다리를 사 와서 꼬리와 지느러미를 가위로 잘라 손질했다. 담금물에서 세 차례 씻은 뒤 도다리의 물기를 제거했다. 쑥과 파, 청양고추도 씻고 다듬었다.

육수는 가장 기본인 멸치 다시마를 사용했다. 충분히 우러나온 육수에 된장을 조금 슴슴하게 풀었다. 색이 까매지지 않도록 국간장은 한 숟가락만 넣고 싱거우면 맨 마지막에 소금 간을 할 계획이었다. 다진 마늘까지 한 숟가락 풀어주고 나선 손질한 도다리를 넣고 바글바글 끓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계를 확인한 나는 급하게 불을 껐다. 조금 늦고 말았다. 아내의 심부름을 하러 갈 시간이었다.

당근 마켓에 올라온 역류방지 쿠션을 사 오라는 심부름이었다. 마꼬가 요즘 젖을 먹고 토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꼭 필요한 육아템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판매자와의 약속 시간이 저녁 시간 대와 겹쳤다. 심부름을 다녀오면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도다리라도 미리 익히려고 된장국에 넣고 끓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재앙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도다리가 된장국 안에서 제대로 푹 익지 않아서 도다리의 육즙이 식어버린 된장국으로 빠져나오며 생선 특유의 비릿한 맛이 국물에 배었던 것이다. 맛술과 후추, 청양고추, 파, 쑥으로 비린 맛을 잡아보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쑥을 제대로 안 익혀서 쑥까지 질겨졌다. 요리의 요소 하나하나가 정확히 망하고 말았다.

아내는 정직한 편이다. 국물 한 숟가락을 뜨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향긋한 쑥과 담백하고 쫄깃한 도다리를 기대했는데 생선 비린내와 퍼석한 도다리뿐이었다. 나는 괜히 애꿎은 쑥만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요리 실패는 늘상 있는 일이지만 도다리쑥국만은 정말 아쉬웠다. 올해는 알맞은 시절이 아니었나 보다.

엄마 젖을 빨다가 곤히 잠든 마꼬의 손가락을 가만가만 만지다가 문득 생각했다. 올해 봄, 마꼬가 태어난 건 알맞은 시절이었을까. 코로나 19로 한창 세상이 어지러운 시기에 태어난 이 아이에게 나는 나중에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어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마꼬가 아니었다면 2020년의 봄을 이토록 행복하게 보내진 못했을 것이다. 마꼬가 우리 곁에 와준 건 그게 언제든 알맞은 시절이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도다리는 비린내가 별로 안 나는 생선인데 저는 팔팔 끓이지 않는 바람에 비린 맛이 나고 말았어요. 한소끔 팔팔 끓여서 바로 드시는 걸 추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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