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욕기를 마치는 우리의 자세

우엉 잡채

by 주토토

육아휴직을 시작할 무렵, 아내의 산후조리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육아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산후조리는 내가 아닌 조리원이 해주는 걸로 여겼다. 어리석게도 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면 아내가 괜찮아질 줄 알았다.

병원과 조리원에서 삼칠일을 넘기고 집에 온 아내는 기운이 없었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계속 누워서 잠을 잤다. 퇴원 후 이틀 날, 그런 아내에게 나는 멋 모르고 짜장 라면을 끓여줬다. 아직 위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아내는 몇 젓가락을 뜨지 못했고 그마저도 속이 더부룩하다고 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지금도 그때의 아내 모습이 단단한 가시처럼 내 마음에 걸려 있다.

나를 정신 차리게 한 건 엄마의 호통이었다. 출산을 마친 산모는 산욕기까지 신생아만큼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산모 스스로 챙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 곁에 있는 누군가가 식사부터 잠자리까지 산모의 모든 걸 살뜰히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본가와 처가의 여건 상 아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코로나 19로 산후 도우미를 부를 수도 없었다.


포위망이 조금씩 좁혀왔다. 모든 경우의 수를 제거하고 나니 핀 조명이 정확히 내 정수리에 떨어졌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육아휴직 동안 내가 보살펴야 하는 건 아이만이 아니라는 것을. 특히 아내를 보살피는 건 남편인 내가 해야 하는 의무라는 것을 말이다.

브런치에서 덴마크에 사는 어느 부부의 산후조리 관련 글을 본 적 있다. 한국 국적의 여자가 산후조리를 하기 위해 친정인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자 덴마크 국적의 남편이 서운해했다고 한다. 덴마크에선 출산한 아내를 보살피는 건 남편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인데, 자신에게서 그 기회를 뺏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문화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그 글을 보고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아내가 모유수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나는 나머지 집안일을 전담했다. 평소에도 집안일을 아내와 함께 해왔던 터라 어렵진 않았지만 둘이서 하던 걸 혼자 하려니 버거웠다. 특히 산후조리 식단을 차리는 건 요리 초보인 내겐 너무 어려운 도전이었다. 육아까지 해야 하니 숨이 턱턱 막혔다. 잠을 못 자 눈이 퀭해지고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느라 밤이 되면 좀비처럼 흐느적거렸다. 활동량을 증명하듯 당시 체중이 4kg가 빠졌다. 그래도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아내를 보면서 산욕기까지는 조금 더 버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바통 터치를 하듯 아내가 벌떡 일어설 거라 믿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산욕기(6주)가 어제부로 끝났다. 그 소식을 알게 된 아내는 슬슬 몸을 움직였다. 작업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마당으로 나섰다.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화분들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아내는 분갈이를 하기 시작했다. 무거운 화분을 척척 들고 흙을 퍼고 시든 잎을 떼내고 흠뻑 물을 주었다. 예전처럼 제법 몸을 움직이는 듯했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아내는 허리와 골반이 아프다며 드러누워 움직이질 못했다.

42일이 지났으니 산욕기가 지난 것은 맞았다. 하지만 무 자르듯 하루가 지났다고 몸이 완전히 회복될 리는 없었다. 국어대사전에선 산욕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해산으로 인한 상처가 완전히 낫고, 자궁이 평상시 상태가 되며 신체의 각 기관이 임신 전의 상태로 회복되기까지의 기간’으로 약 6주(길면 8주)를 이른다. 하지만 사전적 정의와 달리, 책 <자연주의 산후조리>(시공사, 2015)에 따르면 산욕기는 신체가 회복되는 시기일 뿐, 일상생활로의 복귀는 최소 100일을 잡아야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실제로 당시 아내는 겉보기엔 멀쩡해 보였지만 조금만 무리를 하면 힘들어 누워있어야 했다.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소화도 잘 안 되어서 속이 더부룩하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럴 때면 죽이나 누룽지를 종종 끓여주었는데, 그건 미봉책일 뿐이란 생각에 위장에 좋은 식재료를 찾다가 우엉을 발견하였다.




초식동물의 투박한 뿔처럼 생긴 우엉은 혈당 조절력이 뛰어나 당뇨에 이롭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엉이 프로바이오틱스처럼 장 속 유익균의 먹이가 되어 장을 청소한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위장이 건강하면 자궁 역시 건강하다고 하여 나는 종종 아내에게 우엉 요리를 해주기 시작했다. 주로 우엉밥과 우엉조림을 했는데 우엉으로 해 먹는 잡채도 있다기에 유튜브에서 레시피를 참고하여 시도해봤다.

특이한 것은 우엉 잡채에는 당면을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잡채는 원래 여러 채소를 섞은 요리를 지칭하는 한자어인데, 우엉이 주가 되어 여러 채소와 함께 볶은 요리라서 우엉잡채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우선 재료 손질부터 하였다. 우엉을 길게 채 썬 다음 함께 먹을 당근과 풋고추, 파프리카도 똑같은 모양으로 길게 채 썰었다. 단백질이자 감칠맛 담당은 우엉과 궁합이 좋은 돼지고기를 사용하였다.

기본적으로 조리방법은 간단했다. 소금, 후추 간을 한 갈은 돼지고기를 팬에 먼저 볶고 잠시 접시에 대기시켜두었다. 돼지고기가 남기고 간 기름에 우엉을 볶고, 당근과 풋고추, 파프리카 순으로 볶은 다음 다시 돼지고기를 넣어서 함께 볶으면 끝이다. 중간중간 간장과 설탕으로 간을 해주고 마지막에 후추와 참깨, 참기름을 뿌려주었다. 개인적으로 내 입맛엔 간장 베이스의 요리들이 느끼해서 다진 마늘을 넣어서 맛의 조화를 잡아주었다.


분갈이를 하고 뻗은 아내를 깨워 식탁에 앉혔다. 잠 묻은 얼굴로 눈앞에 있는 괴이한 요리를 발견한 아내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이게 뭐냐고 물었다. 내가 우엉잡채라고 요리를 소개하자 아내는 소개팅에 끌려온 사람처럼 한동안 말없이 그릇을 쳐다보았다. 나는 이것은 잡채이며 잡채는 여러 채소를 섞어먹는 것이니 이것은 우엉잡채가 맞다고 구구절절 설명해줬다.

아내는 이름이야 어떻든 우엉을 채 썬 것이란 사실에 조금 의심을 거두고 젓가락으로 잡채를 한 움큼 집어먹었다. 나름 마음에 들었는지 아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우엉잡채가 좋았다. 잡채밥을 해 먹듯 밥에 넣어 와구와구 씹었다. 가늘게 채 썬 우엉의 식감이 면을 먹는 것 같아서 재밌었고, 씹을수록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우엉 특유의 달콤함이 마음에 들었다. 간장과 참기름만으로도 우엉에 깊은 풍미가 배어 조리방법은 간단해도 그 맛은 결코 간단치 않은 훌륭한 요리였다.

“이제 뭘 해도 다 맛있구나.”

“그렇지?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네.”
“응. 진짜.”

“산욕기가 지났지만, 아직은 무리하면 안 되나봐.”

“응. 진짜.”


그동안의 숱한 실패와 민망함, 구차함 따윈 잊어버리고 나는 거만을 떨었다. 늘 내 요리의 실험대상이었던 아내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내 노력을 가상히 여겼다. 처음 아내에게 요리를 해줄 때만 해도 요리에 영 자신이 없어서 아내가 몸을 회복하는 산욕기까지만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심정이었는데, 아내가 내 음식을 좋아하는 날이 오다니. 기분이 묘했다. 아내가 일상생활로 복귀하려면 100일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까짓것 좀 더 식탁을 차려볼까. 앞으로 57일 남았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우엉은 껍질을 벗기는 순간 금방 갈변이 되더라고요. 저는 어차피 간장 때문에 갈색으로 변할 거여서 갈변 방지를 신경 쓰지 않았는데요. 유튜브에 있는 다른 영상들을 보니 식초물이나 찬물, 소금물에 담근 다음 요리를 하니까 우엉의 색이 갈변되지 않고 색이 훨씬 예쁘게 잘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다음엔 저도 갈변 방지를 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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