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 소가 오는 자이언트 트리
운전해서 와도 되겠는데? 태국 형님이 딴소리를 한다. 하긴 십 분도 채 안 걸렸다. 가파른 오르막이지만, 아예 못 올 정도는 아니다. 막상 와 보면 별 거 아니다. 미리 키우는 공포가가장 세다. 우리를 데려다준 빨간 트럭과 같은 트럭이 여러 대 , 그냥 자동차, 그냥 오토바이도 여러 대. 자이언트 트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다. 개나 소나 오는 곳. 준비했던 흥분을 거두기로 한다. 내가 쓴 시간, 피로에 걸맞은 특별함이 아니잖아. 여행 좀 했다 싶은 이들은, 여행을 보지 못한다. 과거를 본다. '이만큼 본 사람'이 되어, 눈 앞을 보지 못한다. 과거에 반쯤 걸쳐진 풍경만 본다. 내가 가 본 어디, 내가 봤던 무엇과 비교한다. 자이언트 트리로 이어지는 구름다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셀카를 찍는 중국인 여행자가 가장 지헤롭다. 많이 다닐수록 여행은 즐겁지 않다. 쉬운 진리다. 많이 먹을수록 행복한가? 많이 알수록 행복한가? 많이 가질수록 행복한가? 아니다. 확실히 아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은 권력이 된다. 더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을, 자기 밑에 두려 한다. 어쨌건 웃는 이가, 세상의 주인이다. 그들 사이에서 입을 삐죽 내밀고, 360도 평가질을 하는 내가 개나 소다. 나는 내가 개나 소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기쁘다. 그걸 알아채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충분히 낮아졌다.
구름다리는 두 개다. 한 다리가 입구, 한 다리가 출구다. 출렁대지만, 아무도 죽일 수 없다. 두 명 이상 동시 이용 금지. 구름다리를 건너면 사진에서 보는 테이블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다. 어떤 테이블은 공중에 떠 있는 것만 같다. 어떤 테이블은 펼쳐진 숲의 시작처럼 보인다. 수십 개의 테이블은 꽉 차 있다. 거대한 나무 하나로 새로운 공간이 창조되었다. 이 나무에겐 괴로움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환경을 파괴하는 파렴치한 세상이, 내 복통처럼, 무좀처럼 괴롭지 않다. 피상적이다. 절절이 아프지 않다. 이 어리석음은 피눈물로 내게 되돌아올지도 모른다. 당장은 이 깊은 숲, 거인국의 우산대 같은 나무가 황홀하다.
이루었다.
짐작했던 곳이 현실이 됐다.
이루었다는 걸 자각하기.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감정이다. 두 시간의 곡예 운전, 피로, 이틀간 지속되는 거북한 속, 체기. 그럼에도 왔다. 가혹하지 않은 따뜻함, 이파리들로 촘촘히 걸러진 공기, 내가 고른 주스. 나는 누리고 있다. 이 주스 한 잔을 여기서 하기 위해서, 몇 달 전부터 이 곳을 상상했다. 상상보다는 덜 거대하다. 대부분이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는 압도적인 이미지는 우리의 뇌를 철썩 갈긴다. 뇌는 놀라서 허겁지겁, 가장 극단적인 서랍에 저장한다. 실제로 내가 만지게 되는 감각은 그래서 싱겁다. 이게 아닌데 싶다. 도리도리. 다시 어리석어지려 한다. 마주하는 풍경은, 극단의 서랍을 이길 수 없다. 받아들일수록 지혜로워진다. 그저 보고, 그저 냄새를 맡는다.
이루었다.
65만 원 통장이 95만 원이 되었다. 막연히 30만 원만 더 있었으면 했다. 그게 정말로 생겨버렸다. 꿈이, 현실이 됐다. 사실 약간 믿기지 않았다. 대신 먹어드립니다. SNS에 이런 피드를 올렸다. 주머니가 가벼우니, 하루 한 끼라도 누군가의 돈으로 먹어보자. 시작은 염치없는 손 벌리기였다. 유튜브에서 먹방을 하고, 펀딩으로 책을 내는 이들을 보면서 낸 용기이기도 했다. 내가 먹어본 곳에서, 작가님도 먹어주세요. 이런 글과 함께 돈이 들어왔다. 치앙마이에서 내가 먹었던 쌀국수, 스무디 한 잔을 작가님도 드셔주세요. 나만큼 좋았나요? 좋았죠? 우린 그곳에 대해 한참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공감의 즐거움! 이제 나는 완벽하게 동의한다. 30만 원의 돈이 들어온 건 처음이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내게 보낸 응원이기도 하다. 내가 30% 이상 커졌다.
가난함을 자부심으로 여기지 않는다. 두려움을 이용하고 싶을 뿐이다. 0이 두렵고, 0에서 멀어지고 싶다. 그 몸부림이 글로, 삶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가 궁금하다. 안도의 한숨을 쉰다. 65만 원으로 안심이 안 되었다. 십만 원일 때도 있었는데, 왜? 그러게 말이다. 내가 지갑을 열 수 있는 날이 됐다. 주스와 케이크는내가 산다. 오늘은 종일 내가 쓸 것이다. 0이 무서울수록, 0으로 힘차게 달려들겠다.
죽다 살아났다.
0에 가까워지는 공포를 나는 작은 죽음으로 생각한다. 일종의 임사 체험이다. 거기서 멀어지면, 휴, 살았다. 새롭게 연장된 삶이 된다. 그런 연습이 반복될수록, 강해질 것이다. 죽음이라든지, 0이 만만해질 것이다. 결국 내가 꿈꾸는 '자유'다. 그때는 훨훨 날 수 있게 된다. 숲 가득한 아늑함을 곁에 두고, 굳이 씨티은행 어플을 켜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때가 꼭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