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이기심에 대해 묻다
이건 치앙마이가 아니야.
무지막지하게 큰 쇼핑몰 마야 몰 때문에 차가 갈 생각을 안 해.
아니 무슨 차가 뉴욕 맨해튼보다 더 막혀.
이 꼴 보려고 방콕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거야?
인구 13만 명이라며?
이런 쇼핑몰이 꼭 있어야 했니?
하늘은 왜 이렇게 뿌연 거야?
치앙마이 너만은 그러면 안되지.
세상이 미세먼지여도 너만은 아니어야지.
아, 원래부터 그랬다고?
화전의 풍습이 여전해서 3월이면 불바다가 된다고?
정부가 못 하게 막으니까
이제는 2월부터 몰래몰래 태운다고?
2,3월엔 중국, 인도 웬만한 도시보다도 공기 질이 훨씬 안 좋다고?
아냐, 아냐. 안 들은 걸로 할래.
못 들은 걸로 할래.
나의 치앙마이가 이럴 리가 없어.
지구 최후의 천국이야.
내겐 치앙마이는 천국의 다른 이름이야.
과거는 미화된다.
93년 대학교 1학년, 수업은 지루하고
집에 돌아오면 코딱지는 늘 새까맸지만
맑은 5월의 한때로만 기억한다.
치앙마이 안녕, 그동안 즐거웠다.
다시 볼 일 없을 거야.
"가고 싶은 절이 있는데, 갈래?"
태국 형님이 모처럼 가자는 곳이 있다.
그럼요, 가야죠. 제 마음도 기뻐지려 합니다.
회계사 일 다 때려치우고, 프랑스에서 제빵 공부를 하려 했던 사람이다.
수속까지 다 마친 상태,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유학 포기하고, 다시 회계사로 복직했다.
부모님의 병원비,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럴 수도 있지. 부모님이 아프다는데.
5남매 중 막내다.
위로 형님, 누님 두 명씩.
부모님 생활비, 조카 학비까지 막내가 책임진다.
내가 왜? 형, 누나가 있는데, 제일 어린 내가 왜?
나라면 억울함을 달고, 형, 누나를 증오했을 것이다.
높은 확률로 가족과 의절했을 것이다.
솔직해지자면,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유학도 포기 안 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전화만 자주 했을 것이다.
간병인을 어떻게든 찾아냈을 것이다.
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다시피 하면서
땅을 사고, 비싼 나무들로 농장을 채웠다.
고향 평상에서 작게 늙어가는 노후를 준비 중이다.
내 부모님 선물까지 해마다 챙긴다.
우리 집은 태국 꿀이 늘 다섯 병 이상 있다.
논리와 계산, 내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한 장본인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덧셈과 뺄셈, 쟁취와 소유가 다가 아니다.
내가 가난한 건
나만 생각해서일지도 모른다.
나만 어떻게든 살피니까
어떻게든 살펴진다.
아슬아슬하게 나만...
나만 챙기는 사람에게는 없는 어떤 빛이 이 형님에겐 존재한다.
나를 챙기는 이들에겐 어떤 잘못도 없다.
우린 그러라고 태어났다.
제대로 챙겨야지.
더 불안하고, 더 아프다면
잘 못 챙기고 있는 거다.
방향성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늘 손해를 보는 형님은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잘 웃는다.
나눔의 미덕. 꼰대 도덕경 같은 소리를 내가 할 줄 몰랐다.
그런 사람이 산다.
그런 사람도 있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비밀은, 우리는 우리보다 크다는 것이다.
너무 작고, 소중해서
그 작음을 지키려 아등바등.
아닐 수도 있다.
아, 치앙마이 뒷담화를 좀 더 하려다가, 글이 이렇게 됐다.
원래 일기란 게 이런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