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하면 꺼지세요, 아니면 죽든가

나무 카페만 보고 싶을 뿐입니다만

by 박민우


“어디까지 왔어?”

“삼십 분 그냥 쭉 직진이요. 오 분 전에 말했어요.”

“지금은? 지금은 어디까지 왔어?”

“아, 2분 지났다고요.”


태국 형님의 직업은 회계사다. 영국계 회사에 다니는데, 태국 재벌그룹에서 연봉 두 배를 걸고 꼬셨다. 형님은 거절했다. 의리에 죽고 사나 봐. 누군가는 ‘거절’에 놀라워하겠지. 그 답답한 숫자로 인정받으려면, 얼마나 지독해야 할까? 나는 ‘강박’ 혹은 ‘지독함’이 보인다. 100일간 쑥과 마늘로 버틴 곰은, 콕 집어서 회계사로 환생한다. 그 부작용에 내가 시달리고 있다. 나는 인간 내비게이션이다. 갤럭시 노트로 구글맵을 켜고 방향을 말해준다. 직진으로 삼십 분. 오! 삼십 분의 자유다. 5분만 눈 좀 붙여야지. 조수석에서 자면 개매너인 거 안다. 아주 잠깐 눈을 붙이면, 훨씬 쌩쌩해진 내비게이션으로 환생한다. 2분마다 확인하는 강박증 회계사는, 나를 재울 마음이 없다.


자이언트 트리를 보러 간다. 거대한 나무 주위로 테이블이 놓여있는, 나무 카페다. 사진을 보고, 입이 떡 벌어진 것도 오래간만이다. 오로라 사진을 보면서도 아이슬란드나 캐나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요르단 페트라, 중국의 만리장성 등은 안 가봤지만, 죽을 때까지 안 갈 자신 있다. 인도에서 타지마할을 쌩깐 게 증거다. 어떻게든 안 가겠어. 기를 쓰고, 이를 악물고, 치열하게 ‘안 갔다’. 웅장한 무엇에 콧방귀 뀌기는 내가 국가 대표다. 거대한 나무 카페라니. 유튜브에서 봤다. 여긴 가야겠다. 커피와 사람이 섞인 숲 속의 나무 카페. 캬, 요 낭만 꾸러기 치앙마이! 이러니 치앙마이를 안 이뻐할 수가 있어?


한 시간 반 거리다. 두 시간이 지났다. 굽이굽이 산길이다. 느려도 안전하게. 형님의 운전 철학을 존중하고, 동의한다. 평지로 내달리면 거대한 나무가 짠! 드러날 줄 알았다. 꼬불꼬불 산 길에 나도 속이 메스껍다.

“꼭 가야겠어?”


형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자이언트 트리까지는 4km. 세상 누구도 이 시점에서 그딴 말을 꺼내선 안 된다.

“아니면 차를 바꿀까?”


아, 이건 또 무슨 근본 없는 말이야.


“여기서 무슨 차를 바꿔요? 그냥 차 돌려요.”

짜증이 났다. 생각보다 길이 꼬불꼬불, 험한 건 인정한다. 본격적인 오르막길이다. 렌트한 차다. 완벽주의자가 낯선 차를 어떻게 믿겠어? 불안한 마음 이해한다. 뭐를 바꾸겠다는 거야? 산길 타이어로 교체를 하겠다는 건지, 랜드로버만 빌려주는 ‘숲 속 렌터카’가 이 촌구석에 문이라도 열었다는 건지? 알아듣게 말을 해야지, 이 회계사 양반아! 2시간 운전이 장난이야? 이 지점에서 포기라는 게 가능해? 겁이 많은 거야? 뇌가 없는 거야? 아니면, 그냥 다 싫은 거야? 내가 가자고 해서 억지로 가는 거야? 나만 좋은 건가? 나만 좋아도 돼. 내가 눈치를 못 채게 했어야지. 기분 잡쳤어. 안 가, 안 가!

차가 멈춘다.


두 쌍의 남녀가 앉아 있고, 중년의 여자만 서 있다. 차도 몇 대 서있다. 숲 속 간이 휴게소인가? 설마 4륜 구동 랜드로버를 기다리는 건 아니지? 요기요 어플로 차까지 배달시키고 그러는 거 아니지?


“얼마나 기다려야 해요?”

“5분이면 와요.”

형님과 여자의 대화다.

차를 바꾼다는 게 정확히 말하면 차를 바꿔 탄다였다. 오르막이 가파르니, 차를 세우고, 트럭 버스를 타고 간다. 누가 봐도 위험한 길이라 전문 운전사가 나선 것이다. 자이언트 트리까지 왕복 100밧(3천 원). 짜증 낸 나만 우스워졌다. 그깟 카페 ‘무사히 모셔드립니다’ 서비스라니. 타지마할보다 하찮은 곳이 절대 아니다. 여기를 다녀온 한국인들은 다들 잘만 다녀왔다. 위험하다는 경고는 없었다. 블로그 건 유튜브 건 그냥 신기한 나무 카페 이야기뿐이었다. 운전대도 오른쪽, 굽이굽이 오르막길. 거뜬히 오르고, 천진하게 ‘꼭 가보세용’ 한다. 한국 사람은 이토록 유능하다. 나만 빼고 유능하다. 과테말라 세묵 참페이 계곡에서 급류에 튜브를 놓쳤다. 손톱으로 나뭇가지를 잡아채고는, 울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얼음으로 맨질맨질 빙벽을 내려오면서 홍콩 여자애가 눈앞에서 붕 떠올랐다. 미끄러진 것이다. 가이드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지 않았다면, 그녀는 죽었다. 최소한 반신불수다. 왜 아무도 미리 경고를 하지 않을까? 당신들에겐 너무도 당연하고, 그저 즐거운 곳이라서? 본인들에겐 쉬었나 보지. 혹시, 과정을 미화하고, 자신을 미화하는 건? 안구의 힘줄이 터지도록 공부하지만, 천재라는 말이 더 좋다. 판검사들은 굳이 터진 힘줄 이야기는 안 하는 건 아닐까?

비루한 나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무능을 혐의로 세상이 나를 분리 배출시키려 한다. 유능한 회계사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망신당하면 좀 어때? 새롭게, 수명이 연장됐다. 새로 태어났다. 이런 날 먹으라고, 오뚜기가 미역국 라면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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