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병원을 가야겠어. 피를 뽑아봐야겠어. 요즘 대유행이라는 a형 간염을 의심한다. 위장 장애인 줄 알았는데, 간염이더라. 그런 인터넷 후기가 꽤 많았다. 식중독이 아니라 간염인가? 가려움의 원인이 빈대인 줄 알았다. 식중독이 아니라 a형 간염인가?
- 송진 가루가 엄청 날려요. 문 꼭 닫으셔야 해요.
고기리 별 다섯 카페 3층이 내가 일하는 공간이다. 다른 건물은 팬도로시 팀 사무실이다. 팬도로시는 대학교 내에만 여는 카페다. 팬도로시 사무실에서 결재서류를 들고 한 직원이 왔다. 김이사가 검토해야 할 서류. 그녀는 기겁을 하며 사무실 창문부터 닫았다.
- 가렵기도 하나요?
- 그럼요. 재채기도 엄청 나와요.
송진가루 때문인가? 고기리에선 방문을 늘 열고 잤다. 방안 냄새가 환기되기를 바라면서. 벅벅 긁은 이유가 송진가루 때문일 수도 있다. 경기도 광주에 와서도 밤새 긁었다. 이렇게 긁다가 날 새겠군. 자포자기 상태로, 잠이 들었다. 어찌 되었건 잠이 온다. 누더기 같은 잠이다. 내 몸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고기리까지 어찌어찌 와서는 컴퓨터에 앉아있다. 사력을 다해 집중한다. 몽롱하다. 몽롱한 채로 긁는다. 도대체 내게 원하는 게 뭐야? 가려움과 메스꺼움, 몽롱함은 분명 목적이 있다. 죽이려는 것 같지는 않다. 더 늦게 전에, 너는 너를 살려라. 경고인 것 같다. 벌떡 일어섰다. 점심시간이다. 어차피 밥맛도 없다. 14번 마을버스를 탄다. 미금역 메디파크로 간다. 4층이다. 어떤 병원을 가야 하나? 고민해 봤자다. 좀 커 보이는 곳으로 간다. 비싸도 어쩔 수 없다. 오늘 결과에 따라 여행 자체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 왜 그렇게 생각해요?
a형 간염 같다는 내 말에, 의사는 담담히 되물었다. 내 배를 여기저기 눌러보더니, 역류성 식도염을 의심했다. 피를 뽑고, 약국에서 약을 받았다. 마침 그때 32번 버스가 섰다. 고기리 방향으로 간다. 별 다섯 커피까지 다 가는 건 아니다. 중간에 내려야 한다.
- 환승입니다.
버스 카드 단말기가 환승이란다. 환승이라니.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진찰을 받고, 피를 뽑고, 1층 약국에서 약을 탔다.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건 30분도 길다. 고기리 안쪽 갈림길에서 내렸다.
-환승입니다.
이번엔 14번 버스다. 14번, 32번, 14번. 원래 같은 번호는 환승이 안 된다. 징검다리로 이용하면 되는 건가? 사실 그런 기대를 하고 32번을 탄 거였다. 그 와중에 한 번의 차비로 왕복했다. 안 될 줄 알았는데, 됐다. 모든 불가능은 의심하라. 천삼백 원으로 놀라운 삶의 지혜를 터득한다. 의사는 식도염 약만 처방했다. 가려움증은 혈액검사 후에 처방하겠다고 했다. 가려움이 머리통까지 번졌다. 벅벅 긁다가, 돌담길에서 내린다. 고기리 별 다섯 커피가 있는 곳. 평온해졌다. 의사의 무심한 표정이 특히 좋았다.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는 나이기를 바란다. 일단은 약을 먹고, 밥을 먹고, 좀 더 긁겠다. 검사 결과에 따라 나의 2019년 휘몰아칠 수도 있다. 당장은 긁지 않는 밤이면 된다. 편히 자고, 편히 먹고 싶다. 그거면 된다. 이토록 소박하다. 큰 벌은 비켜가기를. 내 수명이 또 멀쩡히 연장되기를. 생각보다 덤덤해서 걱정이다. 보통 덤덤할 때 나쁜 결과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늘 그렇다. 방심하는 주인공에게 시한부 선고가 땅땅땅. 그냥 덜 긁고, 편히 자면 된다. 어차피 죽지만, 빨리 죽고 싶지 않다. 그게 어리석은 걸까? 수명을 탈탈 털어 쓴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만족하십니까? 젊을 때 안 죽어서, 만족하십니까? 몇 명은 다른 답일 것 같다. 오늘 오후도 천천히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