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이 감사합니다

눈을 뜨는 아침, 그게 기적이다.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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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긁었다. 지르텍을 사 왔어야 했다. 약국 문을 닫았다. 괜찮겠지. 편의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괜찮겠지. 밤 열 두시가 되어 눈이 번쩍 떠졌다. 불을 켜고 본격적으로 긁었다. 몇 번 긁고 말 가려움이 아니다. 삼십 분을 띄엄띄엄 긁었다. 두드러기가 포르르 올랐다가, 사르르 사라진다. 대상포진으로 투신자살한 사람을 알고 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베란다를 넘었다. 얼마나 아팠으면, 뛰어내릴 생각을 했을까? 나는 15층에 산다. 이런 고통이 열 배는 차곡차곡 쌓여야 베란다로 향할 것이다. 이런 가려움 열 개가 차곡차곡? 차라리, 죽고 말지. 하찮은 자극, 가려움이 모든 인내심을 샅샅이 분해한다.


왜 매일 칙칙한 글만 쓰지? 작정하고 키득대는 글이 안 나와? 마흔일곱 살인데 왜 멀리 온 것만 같지? 어글리 슈즈를 신은 젊음들이 왜 이리 얄밉지? 왜 갑자기 코카서스가 지겹지? 피검사는 어떻게 나올까? 시한부 글쟁이가 될까? 그래도 돼. 영원히 살 것처럼 발랄한 것도 역겨워. 내 글이 언제부터인가 까마득하게 지겹다는 당신. 내가 왜 놀란 줄 알아? 뜨끔했거든. 내 솔직함이, 내 감옥이 됐어. 뻔뻔하고, 발랄하고, 선을 안 넘는 글을 쓰고 싶어. 누구도 아프지 않았으면 해. 나를 아프게 하고 싶었지? 내 일상이 불편했지? 내가 나락으로 떨어지길 바랐지? 잘했어. 좋은 때, 확실하게 가격했어. 가려워. 가려우니까, 당신이 아파. 당신의 불면이 떠올라. 우리는 아픈 사람. 솔직히 당신이 밉지 않아. 아프니까 할퀴는 거지. 해맑기만 한 사람들이 더 미워. 더 깊이 긁고 싶어. 이 모든 두드러기가 핏물이 될 때까지. 당신이 환호하는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일부러는 못 써. 그냥 이대로 내가 되려 해. 아니, 아니. 이 가려움만 해결된다면, 써 볼게. 미친 감사함으로 쓸게. 졸려, 가려워. 어쩌겠어. 계속 긁어야지. 당신은 실패했어. 당신 때문에 뒤척이지 않아. 가려워서야. 가려우니까, 아무 생각이 안 나. 아니, 가끔, 떠올라. 세상의 아픈 사람, 긁는 사람, 화상으로 피부에 붕대가 달라붙은 사람.


30분을 긁다가 잠이 들었다. 4시 반에 일어났다. 나를 저주했던 한 밤의 삼십 분이 까마득하다. 사실은 좀 기쁘다. 안 자도 된다. 절대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일기를 쓰고, 옷만 챙겨 입고 전철을 탄다. 춥다. 재킷도 하나 걸쳐 입었다. 5월이다. 춥다. 덜덜덜. 춥지만 고기리 별 다섯 카페에 가서 컴퓨터를 켜야 한다. 뭐라도 해야지. 그 마음으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볼 것이다. 나는 가렵다. 송진가루가 날아들겠지. 5월의 나무가 두렵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목욕탕부터 간다. 온몸이 더운물에 잠긴다. 졸다, 깨다 한다. 늦으면 안 된다. 14번 마을 버스를 타고 고기리로 가야 한다. 졸다, 깨다 한다. 빨리 일어나야지. 다시 존다. 한 밤의 잠보다 깊은 잠이다. 오늘 하루도 잘 살 수 있다. 잘 살 수 있겠다.


혈액 검사 모두 정상


미금역 메디파크 내과는 내게서 뽑아간 검붉은 피가 정상이라고 했다. 여행해도 된다. 당분간 안 죽어도 된다. 내 가려움은 알레르기다. 내 안의 문제가 아니라, 봄의 자연 때문이다. 큰 위로다.


장 대표와 긴 이야기를 나눈다. 장 대표는 극심한 무기력증을 앓고 있다. 성공한 사업가지만, 이룬 것이 없어도 된다. 아니, 놓고 싶다. 죽어도 된다. 아니, 죽고 싶다. 그런 감정들이 온몸을 지배할 때가 있다. 자주 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출발, 케냐 나이로비로 향하던 보잉 737기는 이륙 6분 만에 추락했다. 157명이 사망했다. 그 비행기는 장 대표 내외가 타려 했던 비행기였다. 일정을 앞당겨 다녀왔다.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딱히 기쁘지 않다. 가방에 있는 오쇼 라즈니쉬의 '틈'을 준다. 독자에게 선물로 받은 책. 나의 성경책이다. 장 대표는 브런치의 내 글을 보고 나를 불렀다. 맛있는 커피를 세상에 알리는데 내 글이 필요했다. 어쩌면 이 책을 받기 위해 나를 불렀을 수도 있다. 한 밤 내내 긁었던 나는, 장 대표에게 내 가려움을 주고 싶다. 단순하고, 열정적인 사람은 긁는 사람이다. 장 대표와 나, 두 사람은 밤새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을 떠올렸다. 별 다섯 커피가 블루 보틀보다 유명해진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건 그것대로, 우린 우리대로. 성공은 성공대로, 불면은 불면대로. 세상은 오해한다. 성공, 돈. 자신을 구원해 줄 패스워드. 우리의 불면은 그것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나, 당신이나 언젠가는 죽는다. 고민도 오해다. 평생 살 것 같아서, 고민이 된다. 가려움이 아침까지 내내 이어질 줄 알았다. 그래서 죽고 싶었다. 모든 고통의 수명을 과대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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