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과 전혀 상관 없는 약수 순대국 풍경. 여기 맛나던데요. 당연히 약수역에 있습니다
-와, 신경관 찾았어요.
치과의사가 너무 좋아한다. 나도 좋다. 신경관이란 게 뭔지는 모르지만, 골치 아픈 존재였다. 충치를 제거하고, 빈 공간 채우면 끝. 그렇게 생각했던 나는 최소한 네 번은 와야 한다는 치과의사를 의심했다. 어이, 의사 양반! 네 번 방문 푼돈으로 애들 학원비 버나 봐? 간호사들과 회식하는 돈은 이런 식으로 벌어? 네 번은 여섯 번, 일곱 번으로 길어졌네? 정액권 끊어서 매일 오라고 하지 그래? 신경관이 안 찾아져? 아이고, 애물단지 내 신경관 때문에 고생 많으세요. 굽실거리기라도 하라는 거야? 이런 신경관, 저런 신경관. 꿰뚫고 있어야지. 당신은 의사고, 나는 환자라고. 그놈의 신경관이 만만하고, 쉬우면 집에서 해결 봤겠지. 그래서 당신이 고소득자인 거야.
아니, 왜 이를 긁다가 한숨을 쉬냐고. 그때마다 얼마나 철렁하는 줄 알아? 내 이는 내 유일한 자부심이었다고. 썩은 이 하나 없었지. 이가 썩었다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됐어. 유일한 자부심이 날아갔다고. 입 벌리고, 침 질질 흘리는 와중에 한숨 소리까지 들어야겠어? 간호사와 그렇지? 맞지? 없지? 암호 같은 이야기는 왜 그리 자주해? CT 촬영하고, 엑스레이 찍고. 입은 벌린 채로 왔다, 갔다. 침 질질 미친개가 되어서는, 아래턱 휴지로 막고 꾸부정 걷는 심정을 알아? 망할 놈의 신경관.
-와, 다행이네요.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니까, 내 입에서도 그 말이 튀어나오잖아. 문제아의 학부모 심정이었거든. 내 아이 죄는 무조건 내 죄. 꽁꽁 숨은 신경관 새끼도 내 죄. 딱히 돈도 더 안 되는 신경치료에 어찌나 몰입하던지. 비싼 손님들이 나 때문에 한없이 기다리는 거 두 눈으로 똑똑히 봤거든. 정교하게 긁고, 파헤치고, CT촬영, 엑스레이로 어렵게, 결국 내 신경관을 찾아내 줬어. 고마워. 수고 많았어. 망망대해에서 유전을 찾는 것과, 흙무더기에서 사금을 거르는 것과, 이에서 신경관을 찾는 일은 비슷하게 거룩하고, 섬세하다. 이런 좋은 결과가 있기까지 끈기 있게 물고 늘어진 의사 선생님(혹은 신경관의 달인)과 약간 아프실 거예요, 고리 끼우고 치료하실게요, 그냥 물이에요. 로봇처럼 모든 상황을 일일이 예고해주신 간호사님께 이 영광을 돌린다. 신경관이 안 찾아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예정된 여행이니까 어쨌든 떠났겠지. 남의 나라에서 훨씬 의심스러운 의사와 신경관 찾기를 했겠지. 치과 의사는 최초의 한국 환자에 손이 다 떨렸겠지. 찾으라는 신경관을 망가뜨리고는, 없네요, 신경관이 없어요. 시침 떼며 나를 한국으로 되돌려 보내겠지. 정말 다행이다. 의미 있는 해피엔딩이다. 곧 내 이의 빈틈이 채워지고, 금으로 덧씌우게 된다. 반쯤 부서졌지만, 썩은 부분이 다 도려내어진 내 이는 쌩쌩하다. 오징어를, 소고기를 두려움 없이 씹는다. 혈액검사 정상, 신경관 발견, 지르텍으로 가려움증 해결. 이런 날도 온다. 만신창이, 불면의 밤도 꼭 필요했었다. 아픔은 예비할 수 없다. 그저 아픔의 끝을 기다려야 한다. 아픔의 끝은 이토록 상쾌하다. 자유롭다. 더 지독한 아픔이라면? 그땐 아마도 죽겠지. 역시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