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고맙다
다섯 시 고기리 방에서 일단 나온다. 용인이고, 분당이 코앞이지만 여긴 계곡, 그냥 시골이다. 뒤척인 후라, 걷는 게 좋다. 아침 공기가 좋고, 밖이라 좋다. 일단 모든 짐을 가방에 쑤셔 넣는다. 집으로 간다.
- 체한 것 같아요.
경기도 광주, 본가
- 몸 관리 좀 잘해. 어디를 또 나간다는 거냐? 한국에서 먹고 살 생각을 해야지. 그 몸을 해서는
- 아버지, 저는 한국에 있으면 몸이 더 아파요.
어머니, 아버지 걱정이 모두 거슬린다. 샤워를 하고, 옷가지를 모두 내놓는다. 균형이 무너졌다. 나는 거대한 두려움이다. 한국이 안 맞는 걸까? 방콕에선 이런 적이 없다. 두렵지만 잠들 수 있다. 감사하다.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일을 해야 하는데, 집에 와 있다. 일종의 무단결근인 셈이다. 별 다섯 커피는 5월 20일 출국 전에 홈페이지, 애플리케이션, 매장 문구 등을 완성하고 싶어 한다. 씩씩하게 해치울 거란 자신감은 과거의 모습. 나는 거대한 두려움이다.
점심을 건너뛰고, 저녁을 먹는다. 밤에 또 토한다. 먹지 말았어야지. 어머니, 아버지는 그러다 죽는다. 그래서 먹었다. 체하면 무조건 굶어야 한다. 나는 내 주장을 관철시킬 수 없다. 관철시킬 수 없다면, 신나게 먹을 것. 신나게 먹고, 토했다. 부모님께 들킬까 봐 화장실 문을 꼭꼭 닫고, 조심조심 토했다. 식중독이다. 빈대가 아니라, 식중독이다. 내 가려움의 이유는 분명해졌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나만 탈이 난다. 나의 균형은, 면역성은 무너졌다. 숨고 싶다. 뒷걸음질 치고 싶다. 확신이 필요하다. 없다.
이 순간
꼭 글이어야 하는 순간. 지금의 내가, 글이다. 나를 의심할수록, 글이 된다. 확신도, 의심도 모두 거짓말. 몸뚱이가 내게 말을 건다. 나는 답을 내야 한다. 아픔의 단계는 꼭 필요하다. 여행도, 글도 아픔 너머에 있다. 협박인가? 축복이다. 고기리의 한적한 계곡길을 걷다가 14번 첫차, 미금역, 다시 경기도 광주역, 다시 32번. 지친 나를 위해 착착착 호흡을 맞춘 버스와 지하철에게 감사한다. 몸에 핀 열꽃에게 감사한다. 멕시코시티에서 한 시간마다 물똥을 싸며 변기에서 울었던 15년 전의 내게 감사한다. 손바닥만 한 원형 탈모, 남미로 향했던 역시 15년 전 내게 감사한다. 늘 아팠다. 아픈 후의 나는, 궤도를 이탈한다.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다. 새로운 궤도로 조금씩, 조금씩. 온 힘을 다해서, 조금씩. 나의 궤도는 수정 중이다. 중학교 때 서른 살의 내 얼굴을 이면지에 그렸다. 서른 살까지만 살고 싶다. 서른 살의 내 얼굴을 보며 빌었다. 그전에 죽을 것만 같았다. 핵전쟁이라든지, 백혈병이라든지. 마흔까지는 차마 꿈도 못 꾸겠으니, 서른 살, 서른 살까지만 살게 해 주세요. 마흔일곱. 이미 기적이다. 하루, 하루가 거저다. 기억해낸 내게 감사한다. 열꽃 말고, 큰 꽃이 곧 필 것이다. 바닥일수록 희망이 된다.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