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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들 - My Playlist

친구 같은 노래가 있다는 건 참 흐뭇한 일이죠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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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남들처럼 열심히 챙겨 듣는 편은 아니에요. 차도 없고, 이어폰도 장시간 쓰면 아파서요. 설거지나 청소를 할 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편이죠. 같은 노래들만 흥얼댄다는 걸 최근에야 인식했어요. 저의 흥얼곡들을 소개합니다.


1. 바비킴 - 고래의 꿈

https://www.youtube.com/watch?v=t2U0uP2hV4c


처음부터 심쿵했던 노래였어요. 기가 막힌 도입부, 바비킴의 목소리, 노랫말까지. 완벽한 정삼각형의 노래였죠. 어떤 꼭짓점으로도 반듯하게 설 수 있는 노래였어요. 쥐어짜지 않으면서, 징징대지 않으면서, 피 토하지 않으면서도 사랑 노래를 할 수 있는 거였어요.


파란 바다 저 끝 어딘가 사랑을 찾아서

하얀 꼬릴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왜 하필 고래일까요? 참신하지 않나요? 작사가가 마침 몰디브나 하와이에 있었던 걸까요?


먼 훗날 어느 외딴 바다의 고래를 본다면
꼭 한 번쯤 손을 흔들어 줘 baby
혹시 널 아는 나 일지도 모르니

I'm fall in love again 너는 바다야
나는 그 안에 있는 작은 고래 한 마리


오오, 처음엔 큰 고래로 시작하더니, 작은 고래가 돼요. 사랑이 바다니까요. 사랑 앞에서는, 작아지기 마련이니까요. 캬아아. 김동명의 시 '내 마음'에서는 화자가 호수죠.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어떻게 보면 '내 마음은'이란 시에서 발전된 비유네요.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 좁은 방안이 갑자기 하와이가 되고, 몰디브가 돼요. 하와이도 몰디브도 못 가봤습니다만.


2. 자두 - 김밥

https://www.youtube.com/watch?v=evzpzQeAivw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좀 특이해요. 그냥 재밌는 노래 정도였어요. 캐나다 친구에게 이 노래를 영어로 번역을 해줬더니 충격을 먹는 거예요.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

날 안아줘 날 안아줘

옆구리 터져 버린 저 김밥처럼

내 가슴 터질 때까지


연인이 깁과 밥이 돼요. 돌돌 말았으니, 19금 남녀상열지사로군요. '안아줘, 옆구리 터져 버린 저 김밥처럼'을 Hug me until rice pops out이라고 번역해 줬죠. 너무 마음에 들어하더군요. 팝송으로 내면 어떤 노래가 나올까요? 제목은 치킨 부리토. Roll me, press me until chicken pops out. 오, 병맛스럽게 사랑스럽지 않나요? 캐나다 친구의 극찬에 노랫말을 자주 음미했더니 정들었어요.


3. 부활 - 사랑할수록

https://www.youtube.com/watch?v=z3qLUZ6r2e8

이 노래가 제 혈관을 타고 흘렀던 날을 정확히 기억해요. 성신여대 앞 차가 너무 막히던 토요일이었어요. 약속 장소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었고요. 서울에서 차가 제일 막히는 지점이었죠. 버스 라디오로 이 노래가 흘러나와요. 순간적으로 돌이 됐어요. 세상이 다 멈추고 노래만 흘러나와요.


한참 동안을 찾아가지 않은

저 언덕 너머 거리엔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 넌

서 있을 것 같아


어떻게 이런 멜로디가 나올 수가 있지? 다른 노래들은 비슷한 노래가 생각나기 마련인데, 이 노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작곡가 김태원은 다른 음악을 절대로 듣지 않는 작곡가로 유명하죠. 이 노래를 부른 김재기는 정식 버전도 아니고, 데모 버전만 녹음하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요. 죽은 형을 대신해서 동생 김재희가 무대에 오르죠. 허망하고, 쓸쓸하고, 신비로운 노래였어요.


4. 이상은 - 언젠가는

https://www.youtube.com/watch?v=g4m1lPoyML4


이 노래도 첫 구절에서 훅 들어와 버렸어요.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이상은은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탄 가수죠. 180cm에 가까운 키, 탬버린을 들고 각설이 춤을 추는 가수. 얼마나 웃긴 노래를 들고 나올까? 팬들이 이상은에게 기대하는 건 재미였어요. 코미디언 같은 가수. 그런데 너무나 차분해지고, 진지해져서 지루한 노래만 부르는 거예요. 진지병, 예술가병에 걸린 거야? 저도 처음엔 거부감이 들더군요.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는구나. 그 부분이 저에게 훅 들어오더라고요. 우리는 우리가 속한 순간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울림이 그윽했어요. 지금도 콧노래로 가장 자주 불러요. 이상은이란 가수가 참 신비롭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기대하는 인기로 꽃길을 걸을 수도 있었어요. 단호하게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요. 진정한 예술가가 '담다디' 때만 억지 연기를 했던 거였어요.


5. 최백호 - 낭만에 대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CKrybgx_l3E

최근에 최백호 노래하는 거 보셨나요? 유튜브로 최백호가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한 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장사익을 좋아하신다면, 좋아하실 거예요. 나이를 먹으면서 더 빛나는 가수가 있죠. 최백호가 그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란 말에 가장 걸맞은 가수가 아닐까 싶어요.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콕 집어서 이 부분이 심금을 울리더군요. 사랑으로 고통받고, 상처 투성이어도 사랑일 때가 좋았노라. 음유 시인이 그렇다잖아요. '실연'은 '시련'으로도 들리지 않나요? 시련도 달콤하다는 거 아닐까요? 와인 같은 가수가, 막걸리 같은 목소리로, 알코올 향 듬뿍 담아서 부른 노래 같아요.


6. 이은미 - 애인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mPAJ18coAFQ

애절한 노래들이야 많죠. 애절함의 끝은 화자가 죽거나, 사랑의 대상이 죽어야죠. 죽어가거나요. 너는 하늘나라에 잘 있니?(신승훈 - 나보다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 시한부 인생인 듯한 화자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바치는 노래(이문세 - 그대와 영원히) 등이 끝판왕 급 노래들이죠. 죽음보다 더 처절한 가사가 과연 있을까?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가 그런 노래였어요. 짝사랑 그 남자가 애인 있냐고 물어요. 좋은 사람 있으면, 나에게도 좀 보여달라고 해요. 즉, 짝사랑 남자는 여자가 이성으로는 안 보인다는 뜻이죠. 오래오래 짝사랑만 했던 남자를 향해, 여자는 담담하게 속으로 말해요. 욕심내지 않는다고요. 짝사랑만이라도 하게 해 달라고요. 가장 쉬운 방법(죽음)을 쓰지 않고, 가장 처절한 노래를 만들었어요. 이런 노래를 명곡이라고 하는 거죠.


7. 이문세 - 광화문연가

https://www.youtube.com/watch?v=zfceY8sBQdo


19988년도에 낸 이문세 5집 수록곡이죠. 타이틀곡은 '시를 위한 시'였어요. 이문세의 곡을 전담했던 이영훈의 감수성이 물씬 풍기는 곡이었죠. '광화문연가'는 수록곡이었죠. 수록곡에 어울리는 좀 뻔한 느낌이었어요.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이문세에게는 좀 쉬어가는 노래였을 거예요. 힘을 빼고, 흥얼대면서 부를 수 있는 적당히 애절한 노래. 너무 애절하지는 않은 노래요. 1998년 발매된 노래가 2011년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 1위에 올라요. 저처럼 흥얼대던 사람들이 계속 곁에 두고 싶었던 노래였던 거죠. 뮤지컬로도 만들어져요. 대중의 사랑이 눈처럼 쌓여서, 거대해진 경우가 아닐까 해요. 저는 이 노래가 크리스마스 캐럴 같아요. 글을 쓰고 있는 이곳, 태국 방콕이 을씨년스러운 광화문이 되고, 종로가 돼요. 눈발이 휘날리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요. 새로운 노래는 자극을 주고, 오래된 노래는 휴식을 줘요. 함께 늙어가는 노래들이 있어요. 젊었다면 외면했을 노래도 있어요. 젊어서 더 다가왔던 노래도 있고요. 어떤 노래는 떠나갔다가 돌아오기도 해요. 나를 둘러싼 노래들이, 나를 둘러싼 공기와 섞여서 나의 시간이 돼요. 특수효과로 하늘을 나는 것만 신기한 게 아니죠. 이런 노래와 함께 나의 시간이 천천히 무르익어가는 것도 마냥 신비로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글이 내게 주는 선물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게 하는 거죠. 보잘것없는 글도 세상에 내보낼 때의 비참함, 그것도 이유가 있겠지, 받아들임. 결국 내 것이 아니구나, 내가 쓴 글이라도. 가벼워짐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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