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유행에 민감해요. 정말 정말 민감해요. 투블럭 바가지 머리는 대놓고 나 한국인이다. 머리에 태극기 꽂는 거와 같아요.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하죠. 한류가 워낙 인기니까요. 그래도 교복처럼, 국민 헤어 스타일로 천하 통일을 이루지는 않아요. 바가지 머리에 안경, 비비크림으로 깔끔 정리된 남자는 한국인 맞아요. 여자는 모자는 기본이고, 복면에 팔토시로 칭칭 감고 다니면 무조건 한국인이에요. 햇빛은 가리고 봐야 하니까요. 카페나 식당에서, 미라 허물 벗듯이 하나씩 껍질을 벗으면 물광 피부 깐 달걀이 둥실둥실 떠다녀요. 타고난 피부도 좋은데, 관리도 엄청해서 번쩍번쩍 눈이 부셔요. 단위 면적당 유광 피부 숫자는 압도적 세계 1위예요. 라이벌도 없어요. 신혼부부 커플티 역시 한국인일 확률이 매우 매우 높습니다. 제 눈엔 연인이고 커플인데, 외국인들은 자꾸 이란성 쌍둥이냐고 물어요. 아니라고오오!
2. 압도적인 정보력, 핫 플레이스 접수 능력
현지인들도 모르는 신상 핫플레이스에 한국인만 바글바글해요. 인터넷 강국이니까, 최신 여행 정보 꼼꼼하게 챙겨서 일정을 짜죠. '노스 게이트'라고 방콕에 가성비 좋은 식당이 있어요. 문 열기 전부터 한국인들만 대기하고 있더군요. 1층 다섯 테이블이 모두 한국인이었어요. 어렵게 온 거, 남들이 가본 곳 나도 가 봐야지. 손해 보고 싶지 않고, 지기 싫은 승부욕이 여행에서도 발휘되죠. 문제는 한국인을 보는 건 또 엄청 싫어한다는 거예요. 여행 와서까지 한국인 보고 싶지 않아! 그래서 한국인 많은 곳은, 한국인이 가장 실망을 하는 곳이기도 해요. 나만 알고 싶고, 나만 여행자이고 싶은 거죠. 한국인 없는 곳 없나요? 이젠 이렇게들 묻고 다니더군요. 한국인이 없는 핫플레이스는, 한국인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한국인에게 유명해져요. 그래서 또 한국인만 바글바글.
3. 봤지? 우리나라가 이 정도야. 애국심도 단연 1위
여행 초보들은 현대 자동차나 삼성, 엘지 TV를 보면 그렇게들 좋아하더군요. 특히 어르신들요. 삼성, 현대, 엘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뿌듯해해요. 그 나라의 안 좋은 걸 볼 때마다, 우리 나라와 비교를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우리나라가 최고지. 암! 느려 터진 서비스, 위생이 의심스러운 식당, 성에 안 차는 대중교통을 보면서 혀를 차요. 이러니까 못 살지. 이러니까 후진국이지. 자부심이 지나쳐서, 다른 나라를 무시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요. 불평을 말하는 건 나의 권리다. 내 입으로 말도 못 하냐. 이런 사고가 투철해서, 어디를 가든 지적과 항의에 열심이죠. 기분파이기도 해서, 조금만 맞춰주면 팁을 또 안 아껴요. 제가 태국인 가이드라면 무조건 서두르는 척, 최선을 다하는 척할 거예요. 다 맞춰줄 거예요. 한국이 최고. 먼저 오버해서, 기를 살려줄 거예요. 한국인 감동도 잘해요. 언뜻 까칠한 것 같지만, 어수룩하기도 해요. 조금만 빠릿빠릿하면 한국인 여행자가 황금알이에요. 큰돈 벌 수 있습니다. 소문도 잘 내주거든요.
4. 인증샷에 목숨을 건다
여행지에서 사진 찍어주는 서비스 이용해 보셨나요? 얼마 정도 생각하시나요? 하루 종일도 아니고, 딱 두 시간에요. 이십만 원 생각하셔야 해요. 싼 건 십만 원대도 있지만, 후기 좀 괜찮은 곳은 무조건 이십만 원 넘어요. 인생샷 남기는데, 이십만 원이 대수냐? 그럴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도 없는 이브닝드레스에 챙이 긴 모자를 쓰고, 애프터눈 티타임을 갖는 여행자도 백 프로 한국인이에요. 그렇게 갖춰 입으려면, 작은 캐리어로는 어림도 없죠. 걷기 편하고, 간편한 게 최고다. 젊은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두고두고 기념이 될 만한 예쁜 사진 한 장 건지는 게, 맛집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해요. 챙 넓은 모자에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한국인과 마주하면 쾌재를 부르세요. 거기가 바로 핫플레이스인 거니까요.
5. 온 국민이 여행 전문가
호텔 후기를 보면 입이 안 다물어져요. 태어날 때부터 다들 호텔 생활만 했나 봐요. 어메니티(호텔에 비치된 욕실 용품) 수준, 샤워기 수압, 수온, 잠시 나갔다 들어왔을 때 청소 상태, 카운터에서 고객 접대 자세(한국인 앞에서 안 웃으면 큰일 납니다), 얼리 체크인(일찍 들어가게 해 달라고오오) 가능 여부, 수영장 크기와 깊이, 인피니티 풀(시각적으로 경계가 없는, 언뜻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수영장)인지 여부 등에 대해 꼼꼼하게 정리된 후기를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비싼 돈 내고, 당연히 따져 봐야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게 놀랍더라고요. 전 세계 호텔 체인을 브랜드별로 비교하고, 브랜드별로 방구조를 꿰뚫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부자인 건가요? 분명 그 사람들도 저처럼 개나리 벽지에, 모노륨 장판에서 연탄가스 마시면서 잤던 시절이 있었겠죠? 김연아가 등장하자마자, 피겨 스케이트 점프, 액셀, 러츠, 토룹, 살코가 뭔지 나만 빼고 다 알고 있더라고요. 피겨스케이트가 이렇게나 대중적인 운동이었나요? 한국인은 전국민이 영재인 것 같아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지금 몇 가닥의 새치가, 하얗게 내 머리를 뒤덮는 날도 이렇게 글을 쓰고 싶습니다. 손가락이 그때까지도 잘 움직였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