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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Dec 22. 2020

사라진 90년대 번화가들

'라테'의 거리는 기억 속에만 있네요

사진은 연합뉴스에서 퍼왔어요


미아리에서 살던 저에겐 돈암동 성신여대 앞이 최고의 번화가였어요. 고등학교가 혜화동에 있기는 했는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도 한 번 못 가 본 촌놈이었으니까요. 집이랑 학교를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거든요. 고등학교가 개신교 학교였는데, 매년 신앙 수련회를 큰 교회에서 했어요. 압구정 광림 교회가 저의 첫 '강남'이었죠. 그렇게까지 놀랄 만한 것도 없었는데, 알아서 기가 죽었었나 봐요. 다 신기하고, 근사하게만 보이더라고요. 태어나서 처음 피자를 먹었던 날이기도 해요. 지금은 사라진 피자인 Pizza inn에서, 샐러드 를 보며 고민했죠. 퍼가도 되는 걸까? 사람들이 퍼가기는 하는데 돈을 따로 내는 건지, 아닌지를 알 수가 있어야죠.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관심할 때 잽싸게 샐러드를 퍼담아 와서는 조마조마해하며 먹었던 기억이 나요. 여전히 우리가 도둑질을 한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그때의 번화가들이 지금은 쪼그라들었어요. 내 청춘을 들뜨게 했던 그 상큼한 거리들이요.


1. 1등 번화가 압구정 로데오 거리


연예인과 연예인을 꿈꾸는 사람, 연예인 안 부러운 킹카, 퀸카들의 거리였죠. 여기가 비버리 힐즈인가? 외국 한 번 못 가본 촌놈은 압구정 로데오 거리가 미국이고, 유럽이었어요. 커피빈 1호점이 한양 상가 제일은행 건너편 쪽에 있었는데, 테라스엔 톱 연예인들이 우아하게 커피를 마셨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쪽에 몰려 있는 미용실로는 연예인 밴들이 줄지어 오가고요. 고센, 안나비니, 맥도널드 1호점, 웬디스, 아랑, 뱃고동, 지오 파스타, 옷가게 안전지대가 있었죠. 지금은 같은 동네가 맞나 싶더군요. 로드숍 화장품, 중저가 캐주얼 매장, 분식집, 그냥 동네 술집 들만 빼곡한 평범한 동네가 됐어요. 부티 나는 껄렁함, 우리가 최고. 우월감을 과시하던 '재수 없음'은 완전히 사라졌더군요.


2. 대학생 멋쟁이들은 여기로 - 신촌 연대 앞


제가 고대를 나왔어요. 연대는 얼마나 다를까? 궁금해서 가봤더니요. 같은 대학교가 맞나? 촌놈은 입을 못 다물겠더군요. 머리엔 선글라스, 허리춤엔 폴로셔츠(혹은 노티카), 닥터 마틴 신발에 이스트팩 백까지. 나 미국 물 좀 먹었어. 연대 파일(앨범처럼 생겼죠. 학교 자랑은 다들 이걸로 했어요) 가슴팍에 안고 새침하게 걸어 다니더군요. 연대 학생 식당에서 프라이드치킨을 처음 보고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고대는 700원 라면이 자랑이었던 때니까요. 세련됨과 청춘이 화학반응을 일으킨 눈부신 활력이 있었죠. 블링블링이란 말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는 상권이었어요. 지금 신촌요? 평범한 대학가 상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더군요. 차라리 건대 쪽이 더 들썩들썩하더군요. 신촌 상권이 건대 상권에게 밀릴 줄이야. 건대 상권은 재래시장까지 섞여 있어서, 구경할 맛 나더라고요.


3. 강남역도 예전의 그 강남역이 아니죠


강남역이야 지금도 유동 인구는 어마어마하죠. 하지만 예전의 청춘 거리 느낌은 없죠. 타워 레코드 앞, 뉴욕 제과 앞은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였어요. 파스타가 청춘의 신문물인 때이기도 했죠. 파빌리온, 팔로알토, 프리베, 통통배, 크레이지 후크 총 다섯 개의 레스토랑이 대인기였어요. 사장이 같아요. 파스타집으로 대박을 치면서, 술집으로 영역을 넓혀갔죠. 규모도 크고, 마일리지와 쿠폰을 남발하는 맛집이었어요. 가격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강남에서 논다는 자부심까지 느낄 수 있었죠. 강남역은 대표적인 청춘의 주말 장소였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노티카 재킷을 걸치고, 버버리 위크엔드 향수를 뿌리고 강남역으로 향했죠. 지금의 실용적인 상권 분위기와 전혀 달랐어요.


4. 한국의 밀라노 - 이대 앞


옷 사려면 이대 앞으로 가야 했어요. 남자도요. 그 유명한 이랜드가 이대 앞에서 시작된 거예요. 2평 보세 옷 매장 '잉글랜드'가 이랜드의 시작이었죠. 주말이면 양쪽 도로로 사람들이 빽빽했어요. 멋쟁이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이대생들과 뒤섞여서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됐죠. 이대 다니는 누나가 밥 사준다고 해서 갔는데, 우리 과 동기 여자애가 하필 식당 밖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제가 알아보고 빤히 봤거든요. 누나가 그러는 거예요.


-되게 고대생처럼 생겼다.


제가 우리 과 애라고 말 꺼내기도 전에요. 우리 과에서 제일 세련된 동기였거든요. 참나, 어이가 없어서. 내 눈엔 제일 세련되고, 예쁘기만 하고만. 전국의 멋쟁이 여자들은 주말이면 이대 앞에서 멋 대결을 펼쳤죠. 이대 앞이 파리고, 밀라노였어요.


5. 지금의 연남동, 망원동, 해방촌은 영원할까?


그럴 리가요? 사람이 변하잖아요. 취향이 달라지니까요. 저도 강남역이, 압구정동이 영원할 줄 알았어요. 영원한 건 없더라고요. 그래서 서글퍼지기도 해요. 식당을 열고, 카페를 열 땐 영원히 잘 될 거라 믿고 여는 거죠. 그런 가게는 5%나 될까요? 다 망해요. 95%가 될 걸 모르고, 수억을 들여서 가게를 열죠. 그 가게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뜬금 마추픽추가 떠올라요. 페루의 공중 도시 마추픽추요. 발견되기 전까지는 아예 정글이었죠. 한 때의 도시도 인적이 끊기면, 숲이 되어 버려요. 사라지는 건 일도 아니죠. 우리는 살아 있을 때의 세상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며 죽죠. 하지만 그 세상도 언젠가는 죽어요. 사라지죠. 조금 더 오래 살고, 덜 오래 살고의 차이죠.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그게 위로가 될 때가 있어요. 공평하게 사라져요. 결국엔요. 곧 사라질 번화가들이 도시를 채우고 있어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삶에 공짜는 없어요. 그렇다고 죽이려고 달려드는 피라니아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콘서트에서 록스타가 군중 속으로 몸을 던지잖아요. 위험해 보이지만, 록스타는 군중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며 사람의 파도를 타죠. 뛰어들면, 용기를 내면 사람이 우리를 살려줄 거예요. 사람의 힘으로, 사랑의 힘으로 공존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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